<미카에게>를 읽고
세상에는 지켜야 할 '룰'이라는 것이 참 많다. 물론 그 룰에 속하는 것은 국가의 기반이 되는 헌법이나 도로 위에서 응당 지켜야 할 교통 규칙뿐은 아니다. 최소한 그런 룰들은, 우리가 어기기 전까지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할 뿐이다. 진짜 무서운 룰은 따로 있다. 어딘가에 글로 적혀있지도 않고, 지켜야만 하는 것도 아니며, 딱히 어긴다고 벌칙이 주어지지는 않는 그런 룰이다. 그러면서도 삶을 살아가다 보면 가장 많이 저촉되고 잔혹하게 처벌받는다.
바로 ‘남들 사는 대로 살아야 하는 법’, 즉 통념이다.
<미카에게>는 그 룰에 굴복할 뻔했던 두 여성이 주도하는 평범하다면 아주 평범한 이야기이다. 둘은 대학 때부터 친구로,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를 머리 위에 이게 된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함께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선택들이 쌓여 이제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결혼해서 시어머니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난임을 겪고 있는 사치코, 멋진 몸매와 얼굴로 무장하고도 귀여운 여자 아이돌의 매니저로 일하는 반전 매력의 미카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드러나는 둘의 관계는 아주 독특하다. 어찌 보면 확고한 신념과 덕력을 가지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미카라는 아이돌을 동경하는 사치코의 모습에서 팬과 연예인의 관계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결혼이란 단어조차와도 거리가 멀어 보였던 미카가, 남자에게 잘 보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만난 지 두 번 밖에 안된 남자와 결혼을 저질러버리려는 모습을 보이자, 사치코는 자신이 알던 미카의 내면에서 무언가 잘못되어감을 느낀다.
이 외에도 많은 여성들이 이야기에 등장한다. 미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미카에게 결혼에 대한 이상한 관념을 심어버리고 미카와 함께 혼활(결혼활동의 줄임말)을 이어가는 시바타 씨, 젊은 시절 외국에서 가이드로 일하다가 평생 혼자 살며 결국 고양이와 둘만 있는 집에서 삶을 마감한 나미에 씨, 사치코의 남편을 홀로 키워내고 언제나 담백하게 카페 미쓰를 운영하는 멋진 시어머니, 춤과 노래는 최고가 아님에도 인간적인 매력 때문인지 최고의 주가를 달리며 인기를 끌었지만 웬일인지 연예 활동을 그만하려는 하루카, 하루카와 함께 아이돌 활동을 하다가 자신은 아이돌 활동이 맞지 않음을 깨닫고 모델계에 입성한 구레하 등. 구시대적인 사고관('그래야만 한다'의 사회)에서 신세대의 사고관('뭐든지 괜찮다'의 사회)으로 완전히 전환되지 않은 과도기의 모습이 이 인물들을 통해 드러난다. 모두 개성 있고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당연해 보이는 것들을 타파하고 혹은 포옹하며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 덕분에 잔잔한 스토리라인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는 소설이었다.
함께 앞을 보는 관계
팬과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가끔 힘들어
왠지 모를 묘한 둘의 상하 관계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붕괴한다. 저 높은 곳에서 언제나 밝게 자신의 신념을 따라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미카는 점점 '남들이 사는 대로' 살기 위해 빛을 잃어간다. 그런 미카를 보며 사치코는 답답함을 느끼고 결국 둘은 잠시 연락을 끊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사치코는 미카의 팬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미카가 돌려준 스크랩북 속에서 미카가 자신만큼이나 둘의 추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다. (나의 연예인이기만 했던 그녀 역시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니!) 그때서야 둘은 비로소 솔직하고 진정 가까운 친구관계가 된다.
나를 항상 응원하고 좋게 봐주는 팬이 있다는 사실은 물론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이 내 멋대로 슬프거나 힘들어질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팬들의 기대와 다른 삶이라고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사치코가 미카에게, 구레하가 하루카에게 기대하고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꼭 당사자들이 보여줘야 할 의무는 없는 것처럼.
진짜 친구는 나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앞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의 좋은 점, 힘든 점 모두 인정해주고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내 모든 것을 터놓고 진심으로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친구 관계뿐 아니라, 가족 관계, 부부 관계, 연인 관계 등 모든 관계가 사실 그렇다. 각자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에게 누군가의 시선에 너무 오래 머물거나, 반대로 내가 다른 이에게 너무 많은 시선과 기대를 던지는 것은 상호 간 좋지 않다.
당연함에 맞서기 위해 나와 맞서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수백 페이지의 종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되는 문장으로 '꼭 그러라는 법은 없다'가 떠올랐다. 이야기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통념'들은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종이 바깥의 나의 마음까지 옥죄어 왔다. 지독하게 공감이 갔기 때문일까.
결혼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 아이돌이라면 연애는 하면 안 된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게 되면 싱글인 친구와의 관계는 끊어지기 마련이다, 성인 여자가 어린 여자 아이돌을 덕질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결혼하지 않고 평생 살면 고독하다....
시대가 많이 개방적 이어졌고, 수용과 이해의 시선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오히려 과도기라서 그런지, 과거의 사고방식과 현실의 내가 믿는 신념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괴로운 순간이 많다. 나조차도 매일같이 겪는다. 아이는 당연히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 세대와 맞벌이가 필수조건인 현재의 가족 형태 사이에서, 출산 여부에 대한 생각 만으로도 뇌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차라리 법적으로 모두가 같은 조건과 규칙에 따라 산다면 최소한 고민할 여지는 없을 텐데. 행복한 고민이자 괴로운 자유다.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것처럼 판은 깔려있지만, 통념과 사회의 시선들이 너무나 뾰족해서, 그것들을 요리조리 피해 살다 보면 나도 그냥 남들 가는 길을 똑같이 가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는 나조차도 그 뾰족한 시선을 던지는 한 명이 될까 봐 두렵다.
당연함에 맞서는 법은 사실 별 거 없다. <미카에게> 속 나미에 씨의 삶이 그 답이 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옛날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외국에서 가이드 생활을 했던 나미에 씨. 홀로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원만한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 덕분에 절대 외롭지는 않은 삶을 살았던 나미에 씨. 자신의 삶의 조각들을 절대 흘려보내지 않고 스크랩북에 하나둘 모아 다음 세대에 전한, 결국 사치코와 미카가 스크랩북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바르게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까지 마련하게 해 준 나미에 씨. 그냥 그녀처럼, 나답게, 살고 싶은 대로, 조금은 아프더라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뾰족한 가시 같은 시선들은 그걸 보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그 시선들을 향해 정면 돌진한다고 해서 내 삶이 박살 나고 찢기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 '별난' 사람이 된다. 그뿐이다. 결국 나를 벌주고 아프게 하는 건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던지는 시선과 통념들이 내 삶을 흔들고 아프게 하기에, 내 삶은 너무나 귀하고 아까운 것이다. 심지어 내가 그 사람들을 대변해 나 자신을 스스로 상처 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결국 당연함, 통념에 맞서는 것은 나 자신과 맞서는 것과도 같다. 중요한 순간에는 용기를 내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도 필요하다. 책임만 내가 질 수 있다면, 내 삶은 온전히 내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