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고
그 유명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최근에서야 읽었다. 한동안 민음사 시리즈에 꽂혀 이 책 저 책 다 읽어보면서도, 이상하게 <동물농장>에만은 손이 가지 않았었다. 너무 유명하고 너무 알려진 책은 괜히 읽기 싫어하는 반골 기질이 여기서도 손을 들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내용은 짧고,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마저 귀가 닳도록 많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아마 밀리의 서재에 이 책이 있지 않았더라면, 내가 다음 읽을 책을 고르지 못해 절절매다가 민음사 추천 도서 리스트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앞으로도 수년간 <동물 농장>을 읽지 못했지 않았을까.
실제로 이 책은 너무나 읽기 쉬웠다. 문장이 쉬워서라든가 이야기가 짧은 것도 큰 몫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인간 사회를 아주 소름 끼치게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책이 유명한 만큼 책에 대한 리뷰도 너무나 많고, 그 수많은 리뷰어들이 느끼는 바들도 역시나 셀 수 없게 다양하다. 누군가는 동물들에게서 특정 리더들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저 동물들 중 나는 어떤 축에 속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모든 페이지들이 독자들을 충격과 공감과 공포에 빠트린다.
그중에서도 나의 마음에, 다 읽은 지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표현이었다.
동물들은 모두 그런 결의가 통과됐다고 기억하고 있거나 적어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자산인 기억조차도 빼앗기고 왜곡당하고 주입당했지만, 그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 기억이 옳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 덕분에 돼지들은 동물들을 착취하면서도 그들이 스스로 행복하고 자유롭다고 믿게 만들었다(이렇게 믿게 만드는 과정도 놓칠 수 없는 <동물농장>의 묘미다). 기억이 왜곡당한 것 만으로, 동물들의 몸과 마음은 모두 돼지들의 소유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문장을 만난 이후부터, 인간인 나조차도, 내 모든 기억과 생각에 의심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믿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정말 알고 있는 게 맞는지, 내 의견이라고 뱉은 말들이 정말 내가 생각해서 내 머리에서 나온 게 맞는지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언뜻 보면 동물들의 기억력이 나빠서, 수명이 짧아서 원래의 진실이 왜곡되고 가려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환경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 나의 과거만 돌아봐도 그 반박에 확신을 더하기는 쉽지 않다. 뉴스와 신문뿐 아니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혹은 유튜브에서 접한 정보들로도 우리는 쉽게 의견과 생각을 왜곡당한다. 그런 생각들은 처음에는 작디작은 한 문장으로 머릿속에 머물 뿐이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안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진실을 가릴 수도 있는 큰 잎사귀를 드리운다. 마침내는 ‘나의 생각’이라는 것이 되어버린다.
‘정보의 홍수’라는 말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교과서에 나왔을 정도로 진부한 말이 됐다. 그로부터 시간이 훨씬 지난 지금, 우리는 정보로 먹고살고 정보로 숨을 쉰다. 정보는 이제 글로, 소리로, 영상으로 쏟아지고 있다. 정보 없이는 삶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셀 수 없다는 사실은 말해봐야 입 아플 뿐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나는, 정보를 흡수하고 그대로 전파하는 그저 매개체에 그치지는 않았는지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생각하는 힘은 오히려 퇴화하고 머리는 요령을 피우기 시작한다. 남들이 내놓은 결론과 추측을 그저 믿어버리고 내 생각인 척하는 것으로 충분히 ‘제 구실 하는 구성원’인 척하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쉬운 길은 몸과 마음에 건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 생각을 지키는 게 낫겠다.
나의 ‘생각’이라고 보이는 것들을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