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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Jan 22. 2021

<뤼팽>은 뤼팽이 아니었음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뤼팽> 리뷰

뤼팽 혹은 루팡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번쩍 떠오르는 것들이 꽤 여럿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직장인의 꿈이자 모두가 되고 싶어 해 마지않는 월급 루팡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코난을 보고 자란 나의 동년배들이라면 코난 극장판에 종종 귀한 얼굴을 비춰주었던 루팡 3세의 이미지를 생각해냈을 것이다. 당연히 모리스 르블랑이 탄생시킨 원작 속 아르센 뤼팽도 절대 빼놓을 수 없겠다.


모든 루팡들은, 당연히 원작 아르센 뤼팽의 패러디 혹은 오마주들이다. 뤼팽이 중절모에 외알 안경을 낀 채 '당신의 xx을 뺏어가겠다'라는 다소 오만한 메시지를 남기며 훌훌 사라지는 '괴도'로서의 모습은, 원작 뤼팽을 본 적 없는 게으른 독자들조차도 거의 동일하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일 것이다. 뤼팽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인 '괴도'라는 단어 자체도 뤼팽이라는 대상이 없이는 온전히 존재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의 기막힌 변장술과 도둑질하는 능력(?) 그리고 유명세에 비견하자면 뤼팽을 소재로 하는 영상물의 숫자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특히 뤼팽의 라이벌이나 마찬가지였던 셜록 홈스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등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환생을 거듭했던 점을 감안하자면 더욱 처참하다.


그래서일까, 넷플릭스의 TOP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뤼팽> 시리즈의 포스터를 보자마자, 일종의 의무감과 정의감이 시리즈 첫 화 보기 버튼으로 내 손가락을 이끌었던 듯싶다. '드디어!'라든가 '기대된다!'라든가 하는 격양된 감정은 딱히 없었다. 수건장 가장 깊숙한 곳에 틀어박혀 손도 잘 안 닿는 수건을 굳이 꺼내다 쓰고, 서랍장 가장 밑바닥에서 빛조차 못 본 채 다른 옷들의 무게에 깔려 질식 중이던 바지부터 꺼내 입는, 나의 독특한 공평성에 대한 고집 덕분이랄까. 세상의 중심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는 것들을 보면 기필코 머리채라도 잡고 이곳까지 데려와야 직성이 풀린다. 뤼팽도 나에게는 일종의 콘텐츠 시장에서의 '아웃사이더'로 보였나 보다.


하여튼 그렇게 <뤼팽>을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뤼팽>이 그 뤼팽이 아니네?



놀랍게도(?) <뤼팽>에는 뤼팽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뤼팽 덕후인 주인공 '아산'만 있을 뿐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뤼팽> 책을 처음 선물 받은 이후부터 뤼팽은 아산의 모든 것이 되었다. 아버지를 잃고 혼자 끙끙 앓던 시절에는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성경이 됐고, 사람들을 속여 목적을 달성해야 할 때는 각종 트릭을 배울 수 있는 교과서가 되기도 했다. 중절모와 외알 안경을 쓰고 다니기에는 단조로운 패션이 유행이 된 현대이기에 아산은 종종 비니와 안경으로 변장(?)하며 뤼팽의 모습을 오마주 하기도 했다.


BBC가 재탄생시킨 현대의 셜록 홈스처럼, 온갖 IT 기술과 현란한 변장술로 치장한 얼음 왕자 같은 뤼팽을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뤼팽>에서의 뤼팽은 그저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인물들에게만 추종받는 가상의 인물일 뿐이다. 심지어 이 추종자들은 주변인들에게 항상 외계인을 보는 듯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뤼팽>에 뤼팽은 없다. 다만 아르센 뤼팽이라는 추리 소설과 인물이 자리 잡고 있는 현대에서의 포지션만이 명확히 드러난다. 조금 격하게 말하자면, 뤼팽은 아산에게 좋은 '도구'일뿐이다.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뤼팽은> 주인공 아산이 펠레그리니라는 대부호에게 품은 개인적인 원한을 풀기 위해 벌어지는 다양한 도둑질, 사기, 절도, 변장술의 총집합이며, 아르센 뤼팽은 이러한 '착한 악행'을 저지르는데 좋은 힌트가 되는 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뤼팽>에는 우리가 아르센 뤼팽에게 기대하는 암묵적인 주인공의 모습이 비교적 적게 등장한다. 비범한 속임수로 가택 침입을 하기보다는 드론을 사용해 집을 뒤진다거나, 모두가 못 알아보는 변장이 아닌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보는 처연한 셀프 분장하는 모습도 보인다. 'X월 X일 X를 훔쳐가겠다'라는 뤼팽의 메시지를 위선적인 부자들이 발견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도 없고, 도리어 아산은 생각보다 꼬리도 잘 잡히고 악당에게 당하기도 자주 당한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 장장 5시간을 내리 TV 앞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다른 넷플릭스 시리즈들에 비해 짧은 러닝타임과 짧은 챕터 수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음은 물론 한국에서도 TOP 10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달성했다.


필자는 그 이유를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모와 가족애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아산은 물론 재치 있고 똑똑하긴 하지만, 동시에 나약하고 감정적이며 완벽하지 못하다. 그의 장점을 만든 것은 아르센 뤼팽이고, 단점을 만든 것은 '가족'이다. 아버지의 죽음이 얽힌 일이기에 감정에 휩쓸리기도 하고 그렇기에 약한 면모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 이상,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몸을 사려야 할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게다가 나의 가족을 위협하고 죽음으로 무자비하게 몰아넣은 그 악당 펠레그리니가 언론을 쥐락펴락 할 정도로 권위적이며 엄청난 부자라면? 아내와 딸을 대하는 태도가 경찰이나 외부인을 대하는 그것과 딱히 다르지 않을 정도로 비(非) 가족적이고 전형적으로 자기만 아는 타입의 인물이라면?  


가족이 연관되어있는 스토리 라인과 선악 대립 구조가 밑그림인 드라마에서 우리는 아산의 답답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 감정적인 행동들, 실패하는 모습에 마냥 비난의 화살을 던질 수가 없다. 아산이 오히려 성인군자로 보일 정도랄까.



돌이켜보면 드라마 내의 실패자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약자의 자리로 걸어 내려온 자들이 대부분이다. 아산의 아버지도 아산을 지키기 위해 거짓 자백서에 서명을 했고, 뒤몽 경정도 가족을 위해 펠레그리니의 위협 혹은 유혹에 넘어갔다. 사실 이 드라마가 아니고서라도 많은 영화, 드라마들 속 주인공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위험을 무릅쓰거나 공리주의적으로는 옳지 않을 선택들을 하며 관객들의 목에 고구마가 매게 한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가족은 진짜 약점일까?


뻔한 대답이지만, 당연히 아니다. 우정, 사랑, 가족애와 같은 것들은, 조금 낯부끄럽고 그 진부함에 닭살이 돋을 지경이긴 하지만, 약점도 강점도 아닌 삶의 목적이자 삶 그 자체다. 그렇기에 펠레그리니처럼 항상 자신의 명예와 돈, 권력을 최우선시하는 '악'은 이야기 전개 상 필멸의 운명을 타고날 수밖에 없다. 삶의 목적과 삶의 본질을 망각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마 추후의 시즌에서 처벌을 받든 죽임을 당하든 작가의 손에 처단 당하리라!)

너무나 뚜렷하게 구분되는 선과 악의 인물 구성 탓에 몇몇 장면에서는 어쩌면 이렇게 인물들이 평면적이고 뻔하게 행동할까 싶은 얄궂은 감상평이 들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 문화인지는 몰라도, 전형적인 한국인 관객인 내가 보기에는 오버스럽고 이해 안 되는 주인공의 잔망스러운 행동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촌 사회. 그런 소소한 어색함 들 만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대범함을 갖춘 시청자라면, <뤼팽>은 꽤 괜찮은 범죄물이자 추리물일 것이다. 꽤 재밌는 반전들도 있고 가슴 졸이는 스릴러도 있으며 구구절절한 가족 드라마도 존재한다.


다만 셜록 홈스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 아르센 뤼팽의 현대화를 기대하는 것도 금물.

아르센 뤼팽과 전혀 연관 없는 드라마다,라고 마음먹고 보는 것을 오히려 추천한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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