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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Jan 31. 2021

당신의 삶으로 결제하시겠습니까?

넷플릭스 <소셜 딜레마> 리뷰 

옛말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다. 앞뒤 따지지도 않고 공짜라면 마냥 좋다고 받아먹다가는 큰 코 다치기 쉽다는 말이다. 조금 비틀어서 공급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당신의 노동력과 수고가 들어간 제품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할 이유가 있는가? 답은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겠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공짜고 값이 싸면 얼씨구나 할 테지만, 공급자는 절대 이유 없이 '공짜 상품'을 내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하루를 시작부터 끝까지 돌이켜본다. 


대부분은 일어나자마자 '무료로' 다양한 SNS에 접속해서 내가 없었던 세상이 잘 돌아갔는지 살펴보기 시작한다. 업무를 하면서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포털들을 통해 개인적인 관심사나 업무에 관한 내용들을 검색하고 스크랩한다. 자기 전에는 '무료로' 볼 수 있는 유튜브 영상들과 또다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SNS에서 다른 사람들의 포스팅과 영상들을 보다가 밤늦게 잠이 든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마 비슷하게 보내게 될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스스로 알아채지도 못하는 새에 이런 '무료' 서비스들을 당연하게 사용하는 하루의 굴레에 빠져들었다. 끊임없이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들만 추천해주는 똑똑한 공짜 서비스들에게서 고개를 돌릴 이유는 없다. 돈을 낼 필요도 없는데,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것들만 제공하는, 가상의 유토피아 같은 곳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상기해보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로 보일 수는 있어도, 그것은 일종의 공짜 양잿물처럼 당신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가져갈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값을 치르는 것이 어쩔 때는 거금을 저당 잡히는 것보다 무서울 때도 있는 법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가장 많은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는 최초의 인류일 것이다. 통장에서 나가는 비용 대비 사용하는 SNS와 포털, 유튜브 등에서 보내는 시간을 따져보면 거의 경이로운 가성비가 도출해 낼 것이다. 이렇게나 공짜를 좋아하는 우리들의 입 속에는 어떤 양잿물이 들이부어지고 있을까? 




이 다큐멘터리에는 수많은 증인들이 등장한다. 한 때는 인스타그램의 초기 멤버였고, 핀터레스트의 대표였으며 페이스북의 핵심 기술자였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스스로 수많은 SNS와 앱들을 제거하고 꼭 필요한 앱이라도 알람 설정을 껐으며 아이들에게는 휴대폰 사용을 자제시킨다


왜일까?


우리는 수많은 온라인 서비스들을 자신의 통제 하에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검색해서 보고, 내가 원하는 사용자를 팔로우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십만 명의 기술자와 서비스 기획자들을 상대로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그들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서비스, 더 오래 시선을 머무르게 하고 더 오래 우리의 삶을 바칠 수 있는 콘텐츠를 보여주기 위해 소위 '최첨단' 기술들을 사용한다. 

같은 검색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구글 검색은 물론이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우리가 더 자주 오래 본 콘텐츠들을 기반으로 팔로워들의 소식을 랜덤 한 척 보여준다. 정직하지만 재미없는 콘텐츠들이 많아 직접 무엇을 볼지 선택해야만 했던 '게시판'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는 서비스가 보여주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클릭해볼 뿐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자그마한 기계를 두 손으로 떠받치고 고개를 조아리며 기꺼이 하루의 많은 시간을 바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삶을 값으로 치르는 수많은 서비스들 속에서 조작당하고 이용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비스에 지불되는 것은 우리의 시간만이 아니다. SNS에서 고가에 낙찰되는 광고에 의해, 서비스 뒤에 숨어있는 인공지능에 의해 선택된 콘텐츠들에 의해, 우리의 사고방식은 시냇물에 바위가 깎여나가는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간다.



그 어느 때보다도 10대의 우울증과 자살 시도, 실제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 단지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나 맞벌이 부모와의 옅은 유대감 때문일까?


아니다. SNS는 소년소녀들에게 준비되지 않은 시험을 치르게 한다. 물론 좋아요와 하트는 사람들이 긍정적인 액션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특히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사춘기 소년소녀들에게, 좋아요 수는 곧 인기투표의 현장이자 댓글은 잊히지 않을 자기 평가로 아로새겨진다. 자신을 비관한다. 


성인이 된 이들이라고 이 서비스들의 타깃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극단적인 의견이 난무하는 영상들, 가짜 뉴스들은 항상 진실보다 재밌고 진실보다 관심을 끈다. 서비스 뒤의 수많은 서버 군단은 이러한 법칙을 터득한다. 고로 사용자들이 자신의 서비스에 더 오래 머물고 결국은 광고에 더 많이 노출되도록, 자극적인 거짓들을 더 자주 사용자들에게 추천한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건강한 대화와 토론은 없다. 모든 영상을 클릭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믿는 사용자들이, 영상 속의 내용에 대해 누구와 어떤 토론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자신도 모르게 양극화된 의견으로 생각도 행동 방식도 미미하지만 지속적으로 바뀌어갈 뿐이다. 



영화를 다 보고 유튜브를 지웠다. 이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앱을 제거한 지 오래고, 접속도 자주 하지 않았지만, 유튜브를 한 번 열기 시작하면 잠을 자기 힘들 지경으로 매몰돼 흘려보냈던 삶이 아쉽다. 

쌓여있는 앱 알람들을 보니 이제는 소름도 돋는다. 어쩜 이렇게 흥미로운 문구들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던가. 앱 알람 설정들도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껐다. 


휴대폰이 조용해진다. 

그제야 비로소 옆에 누워 자고 있는 가족과 강아지, 마루에 쏟아지는 노란 햇빛들이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다. 공허해진 자극에 약간은 초조하지만, 책으로 달래기로 하고, 일기도 써본다. 


눈도 손도 머리도 이렇게나 생생하게 살아있는데 그동안 손바닥만 한 기계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기도 귀찮아질 만큼 내 삶을 유보하지는 않았는지. 


그동안 너무 쉬어서 케케묵은 먼지가 쌓였던 머리를 팽팽 돌아가게 할 만큼, 정신이 바짝 드는 영화였다. 

까맣게 꺼져있는 휴대폰을 보니 왠지 승리감이 느껴진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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