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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Aug 10. 2024

내가 물려받았고, 나도 물려주고 싶은 3가지 유산

증여세 걱정도, 깎아먹을 걱정도 없는 진짜배기 유산

아이를 둘씩이나 낳고 보니, '나'의 '현재'보다는 '아이'들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이 어떻게 크면 좋겠다라든가, 아이들과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싶다라든가, 도무지 아이들을 떼놓고는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미리 말하자면, 나는 이런 삶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겁다. 아이들 없이 부부끼리 호화로운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보다는 아이들과 소소하게 계곡에 물놀이 가는 삶이 더 충만하고 풍요롭게 느껴진다. 남편과만 고급진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계란볶음밥 해 먹는 저녁 시간이 더욱 배부르다. 더군다나 아이가 밥을 잘 먹을 때면, 크~ 그렇게 배부를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돈 아껴서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여튼 삶의 중심점이 많은 부분 아이들에게로 기울었다.
불행하지 않다.
가뿐하고 명랑하게 기울어진다. 


이렇게 아이들의 미래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또 하나. 우리 부모님과 나의 관계도 자주 돌아보게 된다. 


부모님과 내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 내가 부모님께 배운 것과 배우지 못한 것에 반추하여 나 역시 우리 아이들과 내가 미래에 어떤 관계가 됐으면 좋겠는지, 어떤 것을 물려주고 싶은 지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감사하게도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좋은 습관과 좋은 가치관을 많이 물려받았다.


배우지 못하거나 물려받지 못한 부분은 내가 가져보지 못한 것이기에 함부로 상상하고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가진 것 외에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역시 나의 많은 부분을 다듬어주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고 가르쳐주고 싶은 것을 잘 전달하는 것이 부모로서 내가 할 일이다. 아이들이 커서 내 나이가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때, '아~ 이런 부분은 우리 엄마아빠에게 물려받아 너무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내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좋은 삶의 태도를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물려주고 싶다. 


첫째, 건강을 지키는 법: 운동, 식습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매일밤 운동장에 끌려가 최소 1시간씩은 걷고 뛰었다. 그뿐일까. 주말에는 등산에도 함께 다니고 중간중간 수영이나 스케이트, 배드민턴 등 여러 가지 육체적 훈련(?)에 담가졌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만 운동 교습에 보내지거나 내쫓아진 것이 아니라, 항상 부모님이 먼저 더 많이 운동하셨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우리 아버지는 매일 아침마다 한 시간 반씩 뛰시고 어머니 역시 매일 산책과 요가를 꼭 다니신다. 참고로 두 분은 환갑을 넘기셨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나 역시 운동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추고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헬스장에서 딱 붙어사는 그런 정도의 운동인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얇고 길게 운동을 해왔다. 임신 때도, 애 둘을 키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산책이든 요가든 헬스장이든 몸을 움직이는 것이 빠진 하루는 괜히 찝찝하다. 그렇게 건강과 몸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시야에 두고 있다. 


이렇게 키워오고 지켜온 체력은 아이 둘을 키우는 지금 빛을 발하고 있다. 육아는 정신력의 끝장과 체력의 끝장의 합이다. (ㅋㅋ) 정신력은 대부분 체력과 수면량에 비례하기에, 지금의 나로서는 잠만 잘 자면 그래도 그럭저럭 즐겁게 잘 육아하고 있는 편이다. 단단한 체력으로 아이들과 놀아주고 웃는 모습을 보면 다시 비워진 체력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한 바른 식습관과 음식에 대한 태도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다. 물론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건강한 음식'만'을 주시진 않긴 했다. 짜장면과 죠리퐁을 먹고 있는 어린 나의 모습이 오래된 앨범 속에서 발견되곤 한다. 하지만 상세히 어떤 음식을 먹고 먹지 않았느냐보다는, 어떤 음식을 지향하고 지양했는지가 내 몸 어딘가에 저장이 된 모양이다. 


플라스틱에 담겨 있는 뜨거운 음식, 환경호르몬이 나올 수 있는 음식들은 피하고, 두레 생협 등을 통해 좋은 식재료로 음식을 해주시던 어머니의 뒷모습, 외식이나 배달 음식보다는 최대한 집에서 요리해 먹었던 어렸을 적 기억 때문인지, 엄마가 된 나의 지금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능하면 집에서 건강한 밥을 해주고 싶고, 유기농 무항생제 식재료로 요리하려고 노력하며, 플라스틱에 담긴 음식들은 피하려고 한다. 


'몸에 안 좋은 것'들을 완벽히 평생 피할 수는 없어도, 건강함을 향하는 나의 노력들이 유전되어 아이들이 커서도 스스로의 몸과 식습관을 한번씩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둘째, 소소한 것에도 행복할 수 있는 능력


일상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은 말 그대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하고 바쁜 삶 속에서도 내 발 밑에, 내 머리 위에, 내 옆자리에 널린 행복의 요소들을 발견하고 행복으로 느끼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이가 많이 든 것은 아니지만, 뒤돌아보면 일종의 '자극'을 '행복'과 동의어로 생각했던 시절도 잠깐씩 있었다. SNS가 처음 인기를 끌었던 시절에는 좋아요나 댓글이 많이 달리면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고, 멋진 여행지에서 비싼 방에서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고, 밤새 게임을 하며 승리의 짜릿함과 패배의 분노를 즐기던 시간이 행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은 정말 '순간의 자극'일뿐. 그러한 자극을 위해 소비된 시간과 재화가 가끔은 아깝기도 하다. 


다만 이런 사고방식이 지금의 많은 젊은 친구들에게도 유효하게 통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명품 가방이나 해외여행, 오마카세에만 행복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까지도 나를 버티게 해주는 행복한 순간들은, 어스름한 저녁에 책에서 읽었던 예쁜 문장들, 퇴근길에 한강에서 마주쳤던 따뜻하고 너른 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치킨 한 마리 나눠 먹으며 떠들었던 시간들, 특히 나의 아이들이 나에게 선물하는 멋진 일상 등이다. 


사실 아이들이야말로 소소한 것에서 최대의 행복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는 존재들이다. 풀숲에 떨어져 있는 매미 허물에도 감탄하고, 계단에 무당벌레라도 한 마리 기어가고 있으면 비명을 지르며 기뻐한다. 이런 능력들을 최대한 소중히 오래오래 지켜나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장 중요한 셋째, 자신도 믿고 타인을 믿을 것: 긍정성, 회복탄력성과 관대함


요즘의 시대는 상실의 시대다. 

믿음과 관대함이 상실된 시대.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긍정이 없는 시대. 


모두가 집을 나설 때 화날 준비를 갖춘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가 싶을 정도다.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작은 실수와 흠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슬프다. 조금만 더 여유로워지면 모두가 편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과한 경쟁의 결과일까. 자신이 조금만 뒤처지는 것 같으면 금세 우울해지고, 다시 조금만 앞서는 듯하면 우쭐해지는 사회적 조울증도 속상하다. 


시험 점수나 보이는 결과가 아닌 걸로도 스스로를 믿고 존중할 줄 알아야, 다른 이들을 보는 시선에서도 평가의 그늘을 거둬들일 수 있다. 결국 스스로를 향하는 시선부터 '믿음'과 '긍정'이 가득해야 타인들에게도 '관대'할 수 있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고 그들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돕고 서로 응원하며 모두가 다 잘 사는 길로 가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실패를 겪어도 스스로를 믿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내가 가장, 진심을 다해 우리 아이들이 배웠으면 하는 자질이다. 살면서 마주칠 수많은 돌부리들에 당연히 넘어질 거고 당연히 아플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아프다고 속상하다고 며칠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겨 울어도 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믿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반대로 다른 이들의 실수와 실패를 관대하게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응원해 주는 따뜻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선지, 내가 넘어지고 다치고 아프고 실수할 때마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나에게 수없이 말씀해 주셨던 "괜찮아 안 죽어"라는 말을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주 많이 입 밖으로 뱉고 있다. 그래, 중요한 것은 "안 죽고 잘 살아있는 것"이지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가끔 다른 이들로 인해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괜찮아 안 죽는"다. 결국은 내가 그들의 실수를 눈감아 주는 만큼, 다른 이들이 나의 아이들의 실수를 눈감아주고 안아줄 것이다. 





그 밖에도, 절약하는 법,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 할 말은 똑똑히 하는 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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