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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슴 Aug 26. 2021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잘 표현하기 위해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질병이 있다고 한다. 이 질병은 정신적 건강 문제이지만 신체적 문제(고혈압, 편두통, 불면증 등)와도 연관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읽었던 기사에서 봤던 내용이다. 기사 제목은 '당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 때 - 감정의 언어에 귀 기울이기'다. 뉴스페퍼민트라는 외신 기사를 큐레이션 해주는 서비스가 있는데 논문을 기반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 많아서 종종 본다.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다. 나도 감정표현이 어색한지라 뜨끔했다. 계속 읽었다.



'감정표현 불능증'을 앓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도 문제를 겪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정서적인 고통을 '이해'하고 '반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의 '정서적인 애착 회피'와도 관련이 있다.
감정 언어를 배우자. 자신의 감정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기록하고, 표현해보자.



나는 무표정인데 무서운 표정이라는 말을 가끔 들었다. 감정 표현은 낯설고 낯 뜨거운 것이라 여겼다. 특히 남성들에게 정서적인 애착 회피(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기를 꺼려하는 것)가 나타나고 있다는데, 처음 마주한 용어임에도 어떤 느낌인지 바로 와닿았다.


문제라고 생각했다. 문제라 받아들이고부터 노력하고 있다. 감정 인식을 잘하고 싶고 감정 표현을 잘하고 싶다. 책을 읽다가 생소한 감정 표현을 만나면 한 번 더 곱씹어보고 어떤 감정일지 추측해본다. 슬픔도 슬프다고, 기대됨도 기대된다고, 기쁨도 기쁘다고 온전히 만끽하려 노력한다.


어떤 감정이 차올랐을 때 구체적인 감정 언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도 고민해본다. 예컨대 '싫다'는 꽤 추상적이다. '불안하다', '두렵다', '역겹다' 등의 구체적인 감정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비언어적 표현도 해본다. 기쁨에 도취되었을 때 얼굴 표정이 추해질까 걱정하면서도 목소리의 톤을 높여 '앗싸' 외쳐보고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EBS 다큐 <감정의 재발견> 내용 중 갈무리



내가 감정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면 그 이유는 짐작이 간다. 감정 언어로 말하자면 '의심스러움', '어색함', '두려움' 때문이었다.


"의심스러움" 뭐가 의심스러웠느냐,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옳은지 의심했다. 어떤 일을 당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기분 나빠해도 되는 건지 의심했다. 내가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왔는데 정말 재미있는 영화가 맞았는지 의심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감정만큼은 옳고 그름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항상 옳다는 사실을 안다. 이 부분에 대한 바람을 담아 매거진의 첫 번째 글을 썼다.


"어색함" 뭐가 어색했느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했다. 어색함 중에서도 쑥스러움의 지분이 가장 크다. 남자라는 성 역할 때문인지 본래 나의 성정 때문인지 모르겠다. 정말 정말 좋은 순간에 많이 들었던 말이 '너 진짜 좋은 거 맞아?'였다. 어떻게 기쁨을 표현하는지 몰랐고 표현하는 내가 어색했다. 화도 어떻게 잘 내는지 모르겠다. 화가 많이 나면 화를 감추느라 얼굴이 화끈해지기도 하고 손이 떨리기도 한다.


"두려움" 감정적인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등 슬픈 감정을 표현하면 사람들이 나를 나약한 사람으로 볼 것 같았다. 혹은 밝은 감정 표현을 많이 많이 하면 가벼운 사람, 헤픈 사람, 경거망동하는 사람으로 안 좋게 볼 것 같았다. 격한 감정에 얼굴 표정이 변하면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어쩐지 이성적인 사람은 합리적이고 판단을 잘하는데 '감정적'인 사람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실언을 하게 될 것 같은 이미지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나의 가치를 하찮게 여길 것 같은 예감까지도 자연스레 따라온다.



내가 <겨울왕국>의 엘사와 <캡틴 마블>의 캐럴 댄버스에 이입했던 이유를 나는 여기에서 찾는다. <겨울왕국>이 각종 클리셰로 치장되어 있었고, <캡틴 마블>에서는 '감정적 이어선 안돼'라며 노골적으로 몇 번씩이나 언급하는 세련되지 못한 연출을 보여줬음에도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억누른 감정의 세월들에서 내 경험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쓴다. 매거진에는 내가 내 감정을 억눌렀던 과거, 하고 있는 노력, 그리고 바라는 미래에 대한 글이 담길 예정이다. <감정의 재발견>이라는 EBS 다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한국 사회는 감정을 눌러두라고 압박하는 분위기의 사회다. 한 명이라도 이 매거진을 통해 감정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그리하여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더 건강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도 쓴다.



마무리다. 이 매거진이 바라는 미래, 최종 지향점은 어디인가. <감정의 재발견>에 출연한 한 인터뷰이의 말씀으로 갈음한다.



로미(심리치유 워크숍 진행자) : 어떤 상황에서도 내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를 다른 사람이 알아주면 참 좋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내가 알아주는 게 가장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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