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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슴 Sep 13. 2021

당신의 모든 감정은 정당하다

의학사를 보면 자신이 달걀 프라이라는 이상한 망상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의 사례가 나온다. 그가 언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찢어질까봐” 아니면 “노른자가 흘러나올까봐” 어디에도 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의사는 그의 공포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진정제 등 온갖 약을 주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어떤 의사가 미망에 사로잡힌 환자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늘 토스트를 한 조각 가지고 다니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하면 앉고 싶은 의자 위에 토스트를 올려놓고 앉을 수가 있고, 노른자가 샐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 환자는 늘 토스트 한 조각을 가지고 다녔으며, 대체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연애소설이다. 남녀 한 쌍이 나오고 남자 주인공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된다. 주인공은 관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철학적인 사유를 한다.


위 인용 부분은 제가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사례가 극단적이다. 내 연인이 스스로를 달걀 프라이라고 생각한다면 당황스러울 거다. 그나마 달걀 프라이면 토스트 가지고 다니라는 얘기라도 하겠지만, 자기가 실은 토스트라 하면 또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상상만으로 난감해진다. 이 부분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감정은 그대로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무조건 맞다고 해야 된다는 말이냐고? 그런 뜻은 아니다. 일단 구분부터 해야 한다. 상대의 말을 둘로 나눠보자. 감정과 사실 관계로. 사실 관계는 맞고 틀리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감정은 옳기만 한 거다.


김제동 씨가 한 방송에서 자신의 썰을 풀었다.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분리수거를 했는데 동네의 한 아주머니가 자기한테 괜히 잔소리를 했단다. 그런데 얼굴이 다 알려진 연예인이니까 그 앞에서는 대꾸를 못했다. 코디에게 전화를 걸어 답답한 마음을 풀어냈다. ‘어떤 아주머니가 분리수거 때문에 나한테 뭐라 했는데 말을 못 해서 답답했다.’는 내용이었다. 빠짐없이 모든 내용을 말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코디는 ‘우리 오빠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버럭버럭, 김제동 씨 본인보다 더 많이 화를 냈다고 한다. 김제동 씨는 감정이 누그러지고 위로받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JTBC <김제동의 톡투유> 중 갈무리



왜 그랬을까? 나는 코디 분이 조건 없이 상대의 감정을 온전히 옳은 것으로 받아들인 채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김제동 씨는 자신이 받아들여졌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코디 분이 사실 관계를 물었거나 따졌다는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사실은 오빠가 분리수거를 잘못한 거 아니야?’, ‘오늘이 분리수거하는 요일이 아닐지도 몰라.’ 같은 되물음 말이다.


다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인용부로 돌아가 본다. 의사가 제시한 해결책 또한, 환자가 느끼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후에 나온 것이다. '네가 예민한 거야', '피해의식 있는 거 아냐?'와 같은 말들,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라고 쉽사리 단정 짓는 말들, 너무나 많지 않은가. 김제동 씨의 코디의 태도는 사실상 의사가 한 처방과 비슷한 효과를 주지 않았을까.


사실 관계는 나중에 따져도 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격언에 맞춰보자면, 감정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없이 수용하는 게 무엇보다 먼저다. 상대의 감정이 아직 격한 상황이라면 그건 아직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혹은 본인의 마음이 정당하다고 알아달라는 외침이 섞여있기 때문일 거다. '공감'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인 채 응답하는 적극적인 행위'에 더 가까운 의미로 나는 받아들인다.



Photo by Andrew Moca on Unsplash



상대에 공감하는 나의 시절보다도 사실 관계가 더 중요한 나의 시절이 더 길었다. 내 마음은 상대방이 정당하다고 여겨주길 바랐으면서 정작 나는 '팩트체크'를 일삼았다. 반성한다. 나는 최소한 내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가깝고 친밀한 사람들에게만큼은 상처를 주지 않고 싶다. 익숙해지도록 계속 연습하려고 한다. 내가 상대에게 받고 싶은 태도를, 최소한 나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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