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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슴 Apr 08. 2018

우리의 '시간의 고향' 무한도전

사실 강제로 예행연습을 했었다. 파업 때문에 무한도전이 방영되지 않았을 때 '없이 살아보기'를 두 차례나 했었다. 그런데 연습을 한들 실제 상황에서 무덤덤해지느냐, 아니었다.



<무한도전> 파업특별편 유튜브 방송 중 갈무리



종영에 대한 멤버들의 소회가 너무도 짧게 느껴졌다. 멤버들이 울컥하다가 말아버린 느낌이었다. 나도 또한 쏟다 말아버린 감정을 해소하고자 처음으로 무한도전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다.



대학생이던 시절, 인간관계에서 실망했을 때, 미래의 불안감에 사로잡혀 바닥상태에서 올라오지 못하고 무기력에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그런 나에게 언제나 손을 뻗어 들어 올려주는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상태를 셀프 처방했다. 눈치 줄 사람이 없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불 끄고 이어폰 귀에 끼우고 화면만 집중해서 보기. 크게 한바탕 웃고 그들의 도전에 이입하고 돌아오면 힘이 생기는 느낌을 받곤 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13화 중 갈무리



독일 문학계의 거장 W.G. 제발트는 시간의 고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일반적인 고향은 추억 속 감정의 공간이라면 시간의 고향은 추억 감정의 시간대를 의미한단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한도전과 관계를 맺은 지난 13년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혼밥 메이트부터, 30대에 낯선 곳에 이민 와서 50대가 된 지금까지 힘든 삶에 위로가 되어 주었던 오랜 친구로서, 장애가 있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말수가 줄어든 나의 대화 상대로서 각자의 무한도전을 추억하고 있었다.



무한도전 시청자의견 게시판 갈무리



알고 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냐는 듯 다른 재미있는 방송을 보며 살아갈 거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멤버들의 모습을 보거나 유튜브에서 '무도 레전드'와 같은 제목에 흠칫하는 일의 빈도도, 감정의 깊이도 차차 무뎌질 것임을 안다.


그렇기에 지금 조금 더 애도해보기로 한다. 내가 사랑하는 tv 프로그램이 종영해서 아쉬운 마음에 그 프로그램을 추억하고 떠올리며 계속해서 마음속에 간직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 애도라는 단어 외에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무한도전 전시회에서 샀던 굿즈를 찾아 집을 뒤져본다. 소진될 때까지 애도하고 간직할 것이다. 나의 시간의 고향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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