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걸로 새해 목표를 정했다. 목표라기보단 위시리스트에 추가되자마자 갑자기 맨 앞으로 치고 올라온 녀석이랄까.
나도 글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중학교 2학년 때 1학년 담당 국어 선생님이 과제로 제출한 내 독후감을 빌려달라고 하면서, 독후감 잘 쓴 표본으로 후배들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왜 누구나 그런 거 하나쯤 있지 않나 칭찬받았던 아주 작지만 소중한 기억. 그걸 마음 저 안쪽에 고이 모셔두고 아직도 자존감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무한동력은 존재한다ㅇㅇ.
몇몇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모임 첫날에 쓴 글은 좋다고 칭찬도 받았는데 점점 부담됐다.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했다. 잘 쓰고 싶은 마음만 앞섰지 정작 내 생각이 없었다. 나로부터, 내 경험으로부터 가공해낸 나의 생각, 나의 주장.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속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급해하지 않아도 됨을 알았다. 모여 앉아 글을 나누는 것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살짝만 봐도 그 사람임이 티 나는 글을 읽는 것도, 역으로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겨우 이해되는 글을 읽는 것도 흥미로웠다.
가장 큰 변화는 이거다. 나는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킬만한 주장을 하는 글만 의미 있는 글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공감해주는 경험이 소중했다. 내 주장에 동조해주는 것보다도 내 글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증언해주는 누군가가 더 힘이 되었다. 타인에게 내가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은 강렬하다. 평소 조리 있게 말을 잘하지 못하는 콤플렉스가 있는 나에게 감정과 표현을 정리하는 이 시간은 특별했다. 정리하면서 분노나 화 같은 격한 감정이 사그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지냈는데 어느새 또 다른 새해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온통 운동, 영어회화 등 새로운 결심을 하기도 하고 나에게 권하기도 한다. 나는 당장은 다른 시도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직 동력이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길 바란다. 느리더라도 계속하려고 한다. 눈덩이가 녹아 없어지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오랜 날 굴리기에 과하지 않을 체력을 들여.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나만의 특색이 묻어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겠지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