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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슴 Sep 10. 2017

님아, 그 덕질을 멈추지 마오

요즘 '가을방학'이라는 가수의 1집 앨범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이 앨범에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 질 때가 있어'라는 곡이 있는데 멍 때리다 놓쳐버리면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 재생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을방학'하면 이 곡을 떠올릴 만큼 유명한 곡이기도 하고, 우울할 때 더 우울 해지기 위해 이만한 곡이 또 없다. 곡을 향한 이러한 애정을 정처 없는 구글링으로 풀다 보니 우연히 '나무위키'의 '가을방학' 페이지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과 가사로 유추해보면 지난 애인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싶은데 실은 '정바비'가 스무 살에 작고하신 형을 그리는 내용이라 한다. 게다가 2012년 공연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던 '계피'가 초입부터 울기 시작해서 관객들의 떼창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이야기도 쓰여있다. 덕분에 그 이후로는 나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울컥해서 떼창에 한 음정도 보태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상상도 해보았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보라색이 무슨 의미인지알아? 소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이란다!' 따위의,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암기부터 해야 하고 심지어는 작가도 그런 의도 없었다고 밝힌 헛소리를 가르치는, 일정 부분 획일화된 국어 교육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공감각적 작품 감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내용을 누군가가 아카이빙 해놓지 않았다면, 뒤늦게 팬이 된 나 같은 사람 혹은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은 절대 간접적으로도 감각하지 못했을 내용이라서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감탄스러웠다. '나무위키'라는 공간에 말이다. '나무위키'는 사실, '위키백과'와 달리 팩트 기록을 목적으로 하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자신의 덕력을 뽐내는 장에 가깝다. 소수의 팬들만 아는 뒷이야기나 가십거리 사이사이를 드립('말장난'의 인터넷 은어)으로 채워서 기록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어떤 분야나 대상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소소한 이야기를 알고자 할 때 가장 유익하고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존재는 온라인에만 있는가, 오프라인에도 있다. 본인이 등반했던 산을 나열하며 각 산의 특징을 운전하는 내내 비교 설명하시는 전문 산악인이자 택시 운전사이신 아저씨. 강다니엘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은 가리지 않고 보는 정도를 넘어서서, 아예 그의 헤어 컬러의 변천사를 시기별로 줄줄이 꿰는 능력자. SM, YG, JYP 소속사별 춤의 특징을 포착해내 몸으로 개성 넘치게 표현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던 성공한 덕후, 성덕 '이찬혁'군. 폰 케이스, 폰 바탕화면을 선인장으로 도배하는 것은 물론, 볼에 선인장 스티커를 붙이고 선인장이 프린팅 된 티셔츠를 입은 채 선인장을 직접 기르는데 필요한 화분을 보러 가자는 친구. 역작은 물론 최신작까지 일본 애니를 훤히 꿰뚫고 있길래,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고민해 보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은 뭐가 있냐고 물었을 때 중얼중얼 몇 개 작품들을 나열하더니 이 분야에 별로 경험이 없는 나에게 맞는 것이 있다며 추천해줬는데, 그 작품을 내가 너무나 재미있게 봐서 2기가 나오는 것 까지 스스로 찾아보게 만들었던 친구 등, 셀 수 없이 많다.



아이돌 덕후로 유명한 박소현 @MBC 능력자들



이들의 공통점은 덕질하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표정부터 달라진다는 점이다. 눈빛은 반짝반짝하고 얼굴에는 생기가 돌며 말이 빨라지기도 한다. 살짝 찌르기만 해도 준비된 듯 줄줄줄술술술 자신이 아는 것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 자체로 아카이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이 방대한 지식을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아무튼 인간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형태의 콘텐츠로 만들어 놓지 않았을 뿐인 거다! 그래서인지 덕후라고 하면, 덕질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대체로 나에게 호감이다. 내가 잘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호기심 있던 영역에 대한 덕질이면 더더욱. 심지어는 종종 썰을 풀다가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혼자 웃기도 하는데 그마저 사랑스럽게 보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균형 잡힌 사람은 모름지기 지, 덕, 체를 갖추고 있는 법이다. 옛말에 틀린 말 하나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덕을 쌓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해보도록 하자.


어쨌든 지덕체는 중요하다. @MBC 에브리원 주간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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