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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슴 Aug 22. 2017

나의 사춘기 시절을 눈감아준 선생님께

나는 분명 착실한 학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슷한 나이 때 창궐했다가 급격히 사라지는 사춘기 바이러스, 오로지 그 녀석만의 잘못으로 인해 나님 마저도 이상한 생각들을 하던 때도 있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나는 누구인가?'를 비롯해, '세상에 나만 진짜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로봇인 게 아닐까?', '수능 언어영역은 가장 가까운 것을 답으로 고르라고 하는데, 가깝고 먼 정도를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 도무지 나는 모르겠는데 기준이 대체 뭘까?’ 등이었다.



순진한 얼굴을 띈 채 위와 같은 질문들을 했을 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반응을 보며 뿌듯해하던 핵멍청이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이따금씩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 속 나놈을 발로 차 버리고 싶은 기분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으며, 동시에 어쨌거나 그때는 그게 정상 아니냐고 징징 거려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문제는, 남들은 슬슬 증세가 약해지고 공부에 관심가지기 시작하던 고2 초반 무렵, 나는 늦깎이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하나의 질문은 '사람들은 왜 보이는 것만으로 쉽게 판단할까?'였다. 생긴 걸 보니 힘 좀 쓰겠다고 나에게 친히 말해준다든지, 내가 멍을 자주 때려서 그러는 건지 어리바리 대하듯 날 대하는 친구들의 태도와 같은 작고 큰 분노의 경험들을 모아모아 응축해 낸 문장이었다.



익숙한 반발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새 학기가 되었고, 내 주변은 온통 새로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중에서도 새 담임선생님을 새 친구들보다 더 좋아했었다. 문학을 담당하시던 담임선생님이 내가 던지는 반항적인 질문들을 철학적인 질문으로 바꿔서 되돌려주셨기 때문이었다. 강제로 담탱이와 얼굴을 마주 보고 몇수백 초를 앉아있다가 ‘넌 성적이 왜 그래’, ‘더 열심히 해라’, '부모님이 참~ 좋아라 하시겠다' 따위의 말을 들어야만 했던 그지 같은 규칙이 우리 학교에 있었는데, 2학년 때만큼은 그 시간이 지적이고 철학적인 문학 선생님과 함께하는 알차고 충만하게 의미 있는 면담시간이어서 좋았다. 예를 들면, 문학 문제는 왜 수학 문제처럼 명확하지 않고 애매한 경우가 많은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러게'라고 내 편을 들어주며 시작해주는 선생님의 성의 있는 긴 답변과 이어지는 성찰적이며 유도신문적이지 않은 질문, 그리고 나의 답변과 질문, 그리고 반복. 그 모든 과정들이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그러면서 동시에 한 인간의 사회성을 키워주는 심리치료의 기능까지 한 것이 아니었을까 오바스러운 생각도 해보게 만드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질문을 하고 싶었다. 그 질문! 그리고 친구들을 환기시켜주고 싶기도 했다. ‘얘가 뭔 소리하는 거야’를 표정으로 쏘아대는 친구들에게 뭔가 되갚아주고 싶어 했던 한 멍청이 놈이 또 떠오른다. ‘이것은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이라구 이 중생들아! 선생님은 알아주실걸?'



그 멍청이는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바보 녀석의 자리는 교실 맨 왼쪽 줄 맨 앞자리 꼭짓점이었는데 이 자리가 너무 눈에 띄지도 않고 너무 안 보이지도 않아 마침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128MB 용량의 MP3 플레이어 대신 이어폰만 가방에서 꺼냈다. 귀에 꼽은 채 수업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꼭 쳐야 할 대사를 반복해서 되뇌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구석진 곳에 있던 나의 귀를,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하셨다. 두근거렸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5분이 채 되지 않아 나는 선생님의 강렬한 시선과 마주했고, 동시에 귀에 반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이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이하 쌤) : 고슴도치야 지금 뭐하니?
멍청이(이하 나) : 수업 들어요.
쌤 : …? 귀에 꼽은 건 뭐니?
나 : 이어폰이요.
쌤 : 수업시간에 뭐 하는 거야 mp3 듣는 거야 지금?
나 : (이어폰 반대편을 보여주며) 귀에 이어폰을 끼긴 했지만 수업 잘 듣고 있었는데요? 왜 저를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시는 거죠?
쌤 : ……






그 날은 전교생이 내 이름은 몰라도 내 얼굴을 보고 또라이를 떠올릴 수 있는 연상 기억법을 적용하게 된 날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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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도 잠깐이나마 학생들 가르쳐보니까 좀 알겠더라고요… 얼마나 당황하셨을까요. 멍청하고 예의 없는 제자라서 죄송합니다ㅠㅠ 그 뒤로는 선생님 뵈러 따로 찾아가는 것도 못 하겠고 그렇더라구요… 졸업하고는 스승의 날들도 많이 있었는데 편지라도, 메일이라도 쓰려는데 용기가 안 났습니다. 아직 반성중입니다. 저 이후에는 좋은 제자들만 만나셨길, 만나고 계시길 빌어봅니다.

조만간 꼭 찾아뵙고 죄송하다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리겠습니다ㅠ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사진 출처 : @SIphotography from THINK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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