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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슴 Feb 27. 2022

3. 잃어버린 사진의 기억

아주 예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 있다. 카메라를 팔고 나서 사진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서 썼던 글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는 도구를 하나 쯤 가지고 있는데, 내게는 그게 카메라였다. 카메라를 중고로 떠나보내고 당장은 생활에 보탬이 될 꽤 큰 금액이 생겼고,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사실 바빠서 카메라를 잘 쓰지 않았으니 파는 게 당연하다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꾸만 사진 생각이 났고, 그래서 다시 구매한 카메라가 지금 내게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카메라가 없던 공백기에 적은 글을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워서 올려본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참 많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 듣고 말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가까이서 보면 별로인 것마저도 규칙적으로 계속되면 균형의 아름다움을 가지게 된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상대적이지만 자신이 만족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 누구나 행복을 느낀다. 요즘처럼 청명한 하늘을 보면 더욱 카메라를 다시 사고 싶어진다. 아직 내가 무슨 사진을 찍고 싶은지 정하진 못했지만 폰카에 담기지 않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카메라 생각이 절로 난다. 물론 사진으로 남길 수 없는 순간들도 있다.


지금 생각나는 아주 소소한 장면이 있다. 나는 빌라가 빼곡히 붙어있는 대학교 원룸촌에 살았었다. 그래서 누가 고기라도 구워 먹으면 그 냄새가 길거리에 진동을 한다. 이 고기 냄새가 아름답다는 건 아니고, 늦은 저녁에 집을 들어가다 보면 누가 창문을 열어놓고 씻었는지 아주 향긋한 비누냄새가 골목에 퍼진다. 흔한 냄새면서도 길거리에서 이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상쾌하고 오묘하다. 러쉬가 매장 앞에서 비누를 풀어 향기를 퍼뜨리는 것과 비슷한가? 음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런 장면은 카메라나 영상 혹은 글로도 남길 수 없다. 그저 그 순간에 존재할 뿐이다.

대학 시절 유럽 여행을 갔을 때 폰카도 없이 일회용 카메라만 들고 떠난 이유도 용량이 무한한 카메라를 가지고 가면 사진만 찍고 끝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기록에 남기기 급급해서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할까 봐. 다시 생각해보니 좀 바보 같았다. 사진 역시 여행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임은 물론이고 한 장 가볍게 찍은 뒤 내려놓고 먹고 마시고 춤추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고 저런 여행 방식을 후회하진 않는다. 이 사실도 겪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니. 그러니 어서 빨리 중고 카메라라도 사야겠다.




<4. 어스름한 아침의 풍경>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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