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 노을 캠핑장 첫 테스트 야영의 추억
카톡 이력을 찾아보니, '백패킹 시작할래?' 라는 메시지가 6월 28일. 이 기록의 시작점인 테스트 야영이 8월 4일. 그러니까 약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 새로운 취미 생활의 준비를 마쳤다. 뭐 하나 마음먹고 시작하기까지 로딩이 오래 걸리는 나에게 이건 정말이지 신기록일듯.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백패킹은 결국 언젠가는 하게 될 취미였다는 느낌이 온다.
1. 자연 좋아함
2. 캠핑 좋아함
3. 집 말고 다른 곳에서 자는 거 좋아함
4. 동물 좋아함
5. 감성 좋아함
근데 백패킹은 자연+캠핑+야외+감성의 종합 세트니 나 혼절. 거기다가 집에서 먼지 쌓인 카메라를 다시 들고 나갈 더할나위 없이 좋은 주제거리이기도 하다.
다행히 백패킹을 시작하려고 하니 주변에 고수들이 많아서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 매일 이거 어떠냐 저거 어떠냐 물어보고 다녔다. 난 세상에 이렇게 캠핑과 백패킹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줄 이제 알았네.
다음 달의 나, 다다음 달의 나에게 손을 좀 벌리며 이것저것 사모았다. 근데 이게 또 백패킹 장비들은 초경량이 필수라서 택배는 쌓이지만 뜯는 맛은 좀 없더라. 택배 상자를 뜯으면 '엥? 이 가벼운게 5만원? 엥? 이건 10만원?' 좀 이런 느낌. 애플같은 전자기기의 언박싱에서 느낄 수 없는 허무함이 들긴 하지만 장비는 장비일뿐!
본격적인 백패킹 여행을 위해 울릉도와 제주도 스케쥴을 잡아두었으나, 이거 텐트 한 번 안 쳐보고 갔다가는 어떤 난감한 일이 펼쳐질 지 모르기 때문에 필수 장비가 준비되자마자 상암 노을캠핑장을 예약했다. 주말 예약은 이미 매진이라 금요일 퇴근박으로 결정.
집에서 노을캠핑장까지는 택시로 15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묘하게 웃겨서 저런 스토리도 올려보고) 주차장에 도착해서 맹꽁이 버스를 타고 5-10분을 더 올라가야 한다. 가는 길의 풍경이 이미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푸르른 자연을 보여주어서 설레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이 곳 상암 노을캠핑장. 저녁 6시가 되기 직전에 도착해서 해는 이미 많이 기울어진 상태.
떨어지는 해가 만들어낸 긴 그림자들을 감상하다 피칭을 시작한다.
탄과 카키 컬러를 적당히 섞은 게 내 장비들의 톤앤 매너. 캠핑 쪽에선 흔한 컬러 조합이지만 인기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듯?
우당탕탕 피칭을 완료한 나의 첫 야영 보금자리. 야무지게 힙플라스크에 위스키까지 담아 온 나의 주책스러운 낭만병. 덥지 않겠냐는 걱정을 많이 받았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기분좋게 선선했다. 물론 텐트 치다가 땀난 건 안비밀. 오자마자 맥주 두 캔 먼저 사온 것도 안비밀.
짠!
해가 점점 빠르게 사라지는 것 같아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찍어보았다.
참고로 맹꽁이와 뱀이 산다니까 조심. 맹꽁이는 맹꽁 맹꽁 리듬을 안 맞추면 성질낸다고 해서 보고 싶었는데 못봐서 아쉬웠음.
어스름을 바라보며 뉴진스의 super shy 감상하기. (어스름보다 슈퍼샤이를 더 많이 본 듯)
그렇게 해가 졌고, 다른 해외 백패킹 영상도 보고 별사진 도전했다가 대차게 실패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고 한다.
짹짹!
은 아니고 까아까아? 까치가 잠 깨움. 아니 그냥 해가 오르니 자동으로 기상. 5시 30분. 일출보다도 먼저 깨어났다. 근데 일찍 깨길 정말 잘했지.
서울의 높은 언덕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아침 안개는 저 밑에 그 많은 빌딩숲이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히 안간다.
일출 감상하다가 더워지니 현실 자각 타임. 해 등지고 앉아서 또 멍때리기 + 아 더워 중얼거리기.
첫 차가 10시인 맹꽁이 버스는 출발까지 한참 남아서 한숨 더 자고 느릿느릿 철수하고 하산!
첫 솔캠 후기: 원래 캠핑의 재미는 먹는 재미가 팔할인데, 그게 빠져도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구나 싶었음.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조건 ( '1. 자연 좋아함 2.캠핑 좋아함 3. 집 말고 다른 곳에서 자는 거 좋아함 4. 동물 좋아함 5. 감성 좋아함') 을 모두 갖추었으면서도 선뜻 백패킹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나의 취미가 될 수 있을지 의심했던 이유는 바로 내가 걷기를 정말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근데 걷기 뒤에 오는 꿀같은 휴식의 맛을 알고나니 걷는 것도 즐길 수 있겠더라. 아마도 내 취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백패킹. (그래도 아직 모름 몇 달 뒤 장비 방출하고 있을수도)
그렇게 내일은 본격적인 첫 백패킹의 시작을 알리는 울릉도로 떠날 예정이다. 다음 후기로 돌아오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