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에서 신상품이 출시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원피스에 미쳐있는 여자인 나는, 휴직을 해서 내년 여름까진 입을 일도 없건만 부랴부랴 자라 앱에 접속했다.
미디, 맥시 원피스 항목을 살펴본다.
내가 입으면 열심히 바닥이나 쓸고 다닐 것 같은 원피스들이 가득하다.
미니 원피스 항목에 들어가 본다.
입고 다니면 동네방네 내 팬티 색깔을 광고할 수 있을 것 같은 원피스들이 가득하다.
아. 이놈들은 적당히라는 게 없구나.
독특한 디자인이 많은 건 좋지만 나같이 패션감각이 부족한 사람에게 걸쳐지는 순간 그저 넝마조각으로 변할 뿐.
'예쁜데 소화 불가능이야.'
오늘도 투덜거리며 앱을 종료한다.
이번에는 에잇세컨즈 앱에 들어가 본다.
눈에 띄는 건 없지만 무난한 디자인들이다.
'아... 이거 얼마 전에 산 건데...'
내가 샀던 원피스를 무려 2만 원이나 세일하고 있다.
짜증이 솟구친다.
리넨 바지도 세일 중이다.
저 바지, 엄청 시원하고 좋았는데.
그러고 보니 저 바지를 살 때 26 사이즈를 샀는데 허리가 남는다는 사실에 좀 놀랐었다.
엉덩이와 허벅지가 튼실한 체형이었던 까닭에 젊었을 땐 아무리 살이 빠져도 26 사이즈가 들어간 적은 없었다.
나이가 들면 하체부터 살이 빠진다더니, 마음고생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엉덩이며 허벅지 살이 빠졌나 보다.
예전엔 엉덩이가 크고 허벅지가 튼실한 체형인 게 너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26 사이즈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허벅지가 굵어야 장수한댔는데 줄어든 바지 사이즈만큼 수명도 같이 줄어든 걸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도 죽기 전에 26 사이즈를 입어 봤으니 소원은 성취한 셈이다.
나 혹은 여자들에게 사이즈는 자존심이다.
66은 사실 굉장히 평범한 체형이건만, 55를 입지 못하는 나는 마치 실패자가 된 것 같았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77 사이즈를 입게 되었을 때는, 과장을 좀 보태서 표현하자면, 인생에 실패한 느낌이었다.
사실은 다이어트에 실패했을 뿐인데도.
그러고 보면 자식이 귀하긴 귀한가 보다.
9년을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살이 빠지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마음이 아프고 슬퍼도 여전히 밥은 맛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입맛이 없다는 게 뭔지 알았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식의 일은 역시 부모에겐 큰 고통이다.
살 같은 건 빠지지 않아도 좋으니 아이와 그저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차피 일어난 일, 살이라도 빠지면 다행이지.
뭐라도 하나 좋은 점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억지로 끼워 맞춰서라도 말이다.
사고 싶은 옷이 몇 개 보이지만 그만둔다.
내년 2월까진 휴직이다.
늘어난 체육복을 입고 동네나 돌아다니는 일정으로 가득 채워질 2025년.
새 옷 따위, 사봐야 입을 일도 없다.
'정말 필요한 물건은 살까 말까 고민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떠올린다.
내년 2월까진 외벌이 생활.
그러니 절약해야지.
'그래놓고 세탁기는 잘도 바꿨겠다?'
'뭐, 72개월 할부잖아. 그리고 세탁기가 너무 더러웠거든? 14년이나 썼으면 바꿀 수도 있지.'
스스로 변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