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정신과에 가는 날이다.
전에 다니던 병원은 의사가 이상해서 더 이상 가지 않고 아이가 입원하기 전에 치료를 받던 병원에 다시 다니고 있다.
정신과에는 언제나 사람이 북적거린다.
오늘은 비는 시간이 없어서 예약을 못했기 때문에 9시 반에 도착한 후 시간이 빌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아?'
갈 때마다 놀란다.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살펴본다.
한 부부가 앉아 있다.
아내의 진료를 위해 남편이 함께 왔나 보다.
부부는 사이가 좋아 보인다.
'남편과 저렇게 사이가 좋은데 정신과에 올 일이 뭐가 있을까?'
나의 편협한 시각이 질문을 던진다.
완전히 기운이 다 빠져서 당장에라도 녹아내릴 것 같은 모습의 아주머니도 있다.
말투가 어눌한 내 또래의 여자,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굉장히 생기 넘쳐 보이는 젊은 남자도 있다.
대기실에는 왜 왔는지 짐작이 되는 사람, 도무지 왜 왔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섞여있다.
나와 내 딸은 어떻게 보였을까.
웃긴 사진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다가 장난도 치다가 아기처럼 안아주기도 하며 사이좋게 앉아 있는 우리는,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가까이 와서 딸아이의 팔에 난 무수히 많은 칼자국을 보기 전에는 말이다.
한 여자가 들어온다.
말투나 행동을 보아서는 지적장애가 있는 것 같다.
"보호자분이 같이 오셔야 해요."
접수대의 직원이 몇 번을 설명하자 나가서 엄마를 데려온다.
엄마라는 사람은 선글라스를 낀 채 통화 중이다.
그 상태로 접수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딸이 말을 걸자 딸에게 짜증을 낸다.
그래도 딸은 계속 말을 건다.
엄마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엄마라는 사람이 딸한테 왜..'
하고 생각하다가 멈춘다.
인간에겐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이러쿵저러쿵하지 말아야지.
기다린 지 한 시간 반 만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딸아이가 저녁약을 늘려달라고 했단다.
"어머니가 보시기엔 아이 상태가 어때요?"
"별로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아빠한테 가서 조잘거리기도 하고 동생이랑도 잘 놀고 방 밖으로 자주 나오고. 학교 갈 때도 옛날만큼 힘들어하진 않는데 자기 직전에 좀 많이 불안해하고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그럼 약을 조금 더 늘리도록 해볼게요."
"그런데 전에 먹던 약은 살이 많이 쪄서 좀..."
"그럼 다른 약도 있어요. 대신에 이 약은 많이 졸리거나 할 수 있고 100명 중에 한 명 정도는 더 예민해지기도 해요. 혹시 그럴 때는 반 알만 먹이세요."
이게 진짜 진료지.
자기 방송 출연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랑만 하던 이전 병원의 의사가 떠오른다.
남의 말은 하나도 안 듣더니.
병원을 바꾸길 잘했다.
진료를 마치니 12시다.
학교에 가도 점심시간을 넘길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학교로 향한다.
생기 넘치던 아이가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네가 결정해."
"엄마가 결정해 줘."
"전에도 말했지만 엄마는 너의 등교에 신경 쓸 기력이 없어. 그러니까 네가 결정해. 결과에 책임만 진다면 엄마는 네가 어떤 결정을 해도 괜찮아."
'시간이 늦어서 못 가겠네.'라는 말을 꾹 참는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할지도 알지만 아는 척하지 않는다.
아이에겐 남이 싫어할 것 같은 말도 할 줄 아는 연습이 필요하다.
"못 가겠어."
한참 만에야 아이가 입을 연다.
나는 그저
"알았어, 그럼 가자."
라고만 대답한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