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딸아이는 보컬 학원에 다닌다.
생뚱맞은 학원이지만 딸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한 적은 처음이라 고민 없이 등록해 주었다.
오늘은 첫 수업.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는 근처 다이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학원 수업은 30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어땠어? 재밌었어? 선생님은 어때? 오늘은 뭐 배웠어?
아이가 오자마자 질문을 퍼붓는다.
"재밌어. 선생님도 좋아. 오늘은 수업 어떻게 할지 얘기하고 내 노래 들어보자고 하셨어."
"선생님 앞에서 노래 불렀어?"
"응."
나는 깜짝 놀란다.
수줍음이 많고 낯선 상황에서 굉장히 불안해하는 아이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해내는구나.
'어른들은 안 무서운가?'
또래 아이들이 무섭고 두려워서 학교에 가는 것도 어려워하는 아이가 모르는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다음 주에는 너 혼자 버스 타고 와야 되는데 할 수 있지?"
"응."
친구들과 몇 번 놀러 온 적이 있는 동네니까 할 수 있겠지.
걱정은 되지만 이젠 스스로 해내도록 품에서 조금씩 내보내야 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해보면서 자존감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 배스킨라빈스 갔다가 가자."
선물 받은 쿠폰이 있다고 했다.
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구경하는 척한다.
아이가 쿠폰을 내밀며 직원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감탄사를 내뱉는다.
원래는 저런 말조차 건네지 못해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지 못하던 아이였다.
'조금씩 나아지는구나.'
남들에 비하면 굉장히 느리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희망이 생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내미가 혼자 밥을 차려먹고 있다.
어떤 유튜버가 만든 요리를 보고 따라 만들었단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들은 혼자서도 곧잘 이것저것 만들어 먹곤 한다.
혼자 두고 가도 걱정이 없다.
집에 참치캔만 사놓는다면 말이다.
아들이 만든 요리를 먹어보니 제법 맛이 좋다.
"아, 누나. 나, 루이 뽑았어!!!"
딸내미가 가챠로 뽑고 싶어 하던 게임 캐릭터가 있었다.
어제 하루를 다 투자해서 뽑았지만 그 캐릭터는 나와주지 않았고, 딸아이는 그 화를 나에게 풀었다.
아이의 투정을 하루 종일 듣다가 지쳐버린 나는 온종일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자기는 관심도 없는 게임이지만 누나가 하는 그 게임에 접속해 결국 누나가 원하는 캐릭터를 뽑은 아들내미가 득의양양하게 말한다.
"누나 줄려고 만든 건데, 누나, 이 계정 할래?"
뭐 저리 착한 애가 다 있을까.
남의 힘듦을 보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가 고생해서라도 남의 힘듦을 덜어주고 싶어 하는 아이.
저런 성격이 본인에게 스트레스가 될까 걱정이 컸는데 정작 본인은 스트레스라곤 받지 않는 아이.
그렇게 엄마와 누나의 힘듦을 덜어주는 아이.
고마우면서도 혼자서 늘 희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들내미도 저렇게 애쓰고 있는데 엄마인 내가 지칠 순 없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누나를 돌보려는 아들을 보며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