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버둥

by 숨비소리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

나는 학교 앞에 차를 세워놓고 딸아이를 기다린다.

병원에 가는 날이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학교를 가지 못했던 딸아이가 오늘은 등교를 했다.

고작 1시간 수업을 들었을 뿐이지만 들어가긴 했으니 어제보단 낫다.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우울증과 무기력은 어느 정도 잡혀서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데 불안증세는 도통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예전보단 에너지가 생긴 것 같다.

옛날엔 스트레스를 받으면 회피를 했는데 지금은 좀 이상한 방식이긴 해도 외부로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 보컬 학원을 다니기로 한 것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미약하긴 하나 어쨌든 좋아지고 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지금은 학교에 가면 불안하다를 학습한 상태라 그냥 생각만 해도 불안한데 그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도 생각보다 괜찮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해요."


아이를 구슬려서라도 학교를 보내라는 뜻이겠지?

감정일기를 쓰게 하는 것도 자기감정에 무딘 딸아이가 생각이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단다.

상담센터에 가도 엄마 숙제, 병원에서도 엄마 숙제를 내준다.

뭐, 아이를 위해서 그 정도는 해야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게임에서 캐릭터 가챠를 한다.

또 꽝이다.


"210번이나 뽑았는데. 너무 하지 않아? 개쓰레기네."


아이가 험한 말을 내뱉는다.


"그러게. 그놈 그거, 왜 남의 집 귀한 딸자식을 고생시키고 그래? 김치 싸대기라도 날려줄까?"


아이의 말에 동조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가챠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던 아이였다.

딸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성이 마비된다.

스트레스에 압도되어 버린달까.

그래도 오늘은 좀 조절이 되나 보다.

조금씩 자신의 스트레스를 관망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나에게 현질 하게 해달라고 조르지도 않는다.


'어? 엄마가 옛날처럼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질 않네?'


라는 사실을 조금은 깨달은 걸까.

방학 때까지 남은 네 번의 등교.

그 네 번을 다 해내면 용돈으로 현질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등교가 좋은 보상으로 연결되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 같다.

그다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직 생활동안에도 쓰지 않던 방법이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아이가 몇 번이고 잘 갈 테니까 미리 해주면 안 되냐고 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내게는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 내가 끝까지 버텨야 함을 이제는 안다.


내게는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키워야 한다, 나처럼 힘든 경험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라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딸아이가 조금만 힘들어하거나 불편해하면 내가 안절부절 거린다.

아이의 불편함이 내 강박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 강박이 내 아이를 약하게 만들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모든 조건을 맞춰주었으니, 야생의 뜨거운 햇살이나 가뭄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

지금부터 잘하면 된다.

자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 딸아이가 부쩍 내게 안겨든다.

그러면 나는 아이를 안아준다.

아이가 부를 때는 웬만하면 옆에 있어주려고 한다.

불안정 애착이 형성되어 있다는데, 지금이라도 엄마에게서 충분히 애정을 채우고 나면 안정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어렸을 때 충분히 주지 못했던 애정을 지금이라도 주려고 애쓰는 중이다.

나름의 사정이야 있었다.

산후우울증도 있었고 딸아이가 5개월일 때 둘째를 임신하는 바람에 제대로 돌볼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그래, 나름의 사정이 있었으니 그때의 나를 원망하기보다는 용서해 주자.

그리고 지금의 내가 부족했던 그 애정을 채워주자.


나는, 죄책감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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