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처럼 일렁이는

by 숨비소리

딸아이는 오늘 3교시에 등교를 해서 4교시를 끝낸 후 급식도 먹지 않고 하교를 했다.

학교에선 불안해서 못 있겠다고 하면서 집에선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오늘부터 단축수업이라 일찍 귀가한 동생과 함께 집이 떠나가도록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학교에 대한 불안감이 엄살이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딸아이가 아니니 그 심정이 어떤지 느낄 수 없다.

내가 이해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영역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

헛구역질도 난다.

몸무게를 쟀다.


'또 빠졌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위장에 문제가 생기는 체질이다.

그래서 요즘 내 위장은 내내 전쟁 상태다.

그래도 식탐이 없는 편은 아니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면 정도는 먹었었는데 이제는 라면마저 먹고 싶지 않다.

음식 사진을 보거나 음식을 먹는 생각만 해도 속이 부대낀다.

입맛이라는 게 사라져 버렸다.


부랴부랴 점심 약속을 잡는다.

지인을 만나 외식을 하면 그래도 집에서보단 조금 더 먹게 된다.

오늘의 메뉴는 갈비탕.

고기를 반쯤 먹다 보니 배가 부르다.


"뭐야? 밥에는 손도 안 댔네."


내가 점심 먹자고 했으면서 정작 내가 먹지 않는 상황이 미안해서 억지로 고기를 다 먹고 밥도 한 숟가락 말아먹는다.


"너, 아까 밥 안 먹으려다가 눈치 보여서 먹었지?"


지인이 묻는다.


"눈치 빠르네."

"억지로라도 먹었으니 됐어."


내 사정을 알고 흔쾌히 점심 약속에 응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딸아이를 미술학원에 데려다주는 길, 내가 묻는다.


"넌 학교에서 무슨 마음이야? 집에서는 이렇게 잘 노는데 학교에선 불안해서 못 있겠다고 하니까 엄마가 이해가 잘 안 돼서 그래. 설명을 해주면 좋겠어."


딸아이는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금요일에는 학교에 가기 싫은지를 설명한다.

한때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딸아이와 싸운 이후로 자꾸 딸아이를 외톨이로 만들려고 한단다.

딸아이가 누구랑 얘기하고 있으면 갑자기 딸아이랑 얘기하던 아이를 끌고 가거나 대화를 가로챈다면서.


"그런 거 보면, 쟤가 내 친구들이랑 모두 친구가 되면 나는 외톨이가 되겠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섭고 불안해."


이제야 이해되는 딸아이의 마음.


"그래. 불안할 수 있지. 이제야 네 마음이 이해가 되네. 그런데 너랑 싸운 애가 네 친구들한테 말 걸었을 때 네 친구들이 다 그 친구한테 갔어?"


"아니. 안 가."


"그래. 그렇지?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네가 친구를 다 잃지는 않아. 한, 두 명은 잃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모두가 너를 떠나지는 않아. 친구는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겨나. 그 과정에서 친구가 없는 순간도 생길 수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너한테 자신을 가져. 그 아이가 그런다고 해서 모든 친구들이 너를 버리지는 않아. 네가 이렇게 말해주니까 엄마가 니 마음이 이해가 되네. 앞으로도 엄마한테 이렇게 설명해 줘. 그래야 엄마가 너를 이해할 수 있지."


"응, 그럴게."


부글거리던 마음이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이해하는 마음이 채운다.


자기를 미워하는 아이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하는 금요일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등교를 했다.

그것이 아이의 최선이었다.


오늘도 나는, 한 박자 늦게 아이를 이해한다.

그리고 늦은 박자만큼 미안함이 밀려온다.

내 마음에 파도가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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