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길

by 숨비소리

친정엄마가 선교활동을 하러 캐나다로 떠났다.
베트남까지 가는 비행도 힘들어했는데 캐나다까지는 어떻게 가려나 걱정했는데 엄마는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했다.
엄마 입에서 무언가가 재미있다는 말을 들은 건 굉장히 오랜만이다.

엄마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식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
친정엄마는 역애착이 굉장히 심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식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그런 엄마가 힘든 딸, 아픈 손녀를 두고 캐나다로 떠났다.
물론 내가 휴직 중이라 떠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건 맞다.
하지만 예전의 엄마라면 결코 힘든 딸을 두고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그 딸이 휴직 중이고, 손녀와 손자가 중1, 초6의 나이라도 말이다.

엄마가 캐나다에 간다고 했을 때 솔직히 기뻤다.

'아. 이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엄마는 역애착도 심하지만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하다.
엄마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 엄마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분명 우리 집인데도 엄마의 입맛에 맞게 인테리어를 바꾸곤 했다.

"그렇게 하는 거 싫어. 그냥 놔둬."

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를 못 본 척 넘어가지 못했다.
기어코 본인 원하는 대로 해놓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게다가 평가를 내리는 말도 자주 했다.
내가 내 마음에 드는 그릇을 샀는데도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코렐이 가벼워서 좋다느니, 그릇이 무겁다느니 하는 말들.

엄마는 내게 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편하지 않았다.
감사한 마음과 짜증이 동시에 마음속을 떠돌았다.

'이렇게까지 잘해주는데 화를 내는 게 옳은 걸까?'

죄의식이 생겨났다.
그러면서도 화가 났다.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 거렸다.

가끔 엄마에게 화를 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슬퍼하고 좌절했다.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 자식에 대한 헌신이 삶의 목표이자 인생의 중심축인 사람에게

"이제 애들 다 컸어. 그냥 놔둬도 돼."

라는 말은 사형선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엄마의 캐나다 선교활동은 우리 모두에게 큰 변화다.
이제는 엄마도 알겠지.
엄마가 없어도 딸의 삶은 굴러간다는 걸.

"다음 주엔 보컬 학원 너 혼자 가야 돼. 알았지?"
"응."

엄마가 있었다면 분명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했겠지.
버스는 위험하다면서.

캐나다에서 카톡이 온다.
아이들은 잘 있냐, 손녀는 학교에 잘 갔냐 등등.
나는 삶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다고 대답한다.
엄마는 섭섭했을까?
자기가 없어도 잘 굴러가는 딸의 삶을 보며

'나는 쓸모가 없어졌구나.'

하고 생각할까?

나는 엄마가 우리들을 위해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 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기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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