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오늘도 조퇴를 했다.
학교에 가기만 하면 배가 아프단다.
신경성 장염.
어렸을 때 나도 앓았었던 병이다.
'쟤는 어쩜 저렇게 나를 닮았을까.'
새삼스레 유전의 힘을 실감한다.
딸아이는 내일 방학식을 한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들 방학 전, 마지막 만찬을 즐기러 지인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 나면 지금처럼 아무 때나 나가긴 어렵다.
메뉴는 짜장면과 짬뽕.
양이 엄청나게 많다.
나는 짬뽕을 좋아하지만 여기는 짜장면이 훨씬 맛있다.
중국요리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어제저녁에 생로먹방을 보다가 갑자기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을 위해 멀리해야 한다는 밀가루 요리.
하지만 배가 고파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필요 이상으로 살이 빠지고 있는 나에겐 먹고 싶은 게 생겼다는 것 자체가 에너지가 생기고 있다는 신호다.
커피까지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두 아이가 모두 집에 와있다.
침대에 나란히 엎드려 휴대폰 게임을 하며 까르르 웃어댄다.
중1과 초6, 성별도 다른 사춘기 남매가 저렇게 오순도순 지내기도 쉽지 않다.
딸아이 때문에 마음고생 중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순하고 착한 아이들이다.
'너무 순한 게 문젠가.'
딸아이가 만약 조금만 더 약아빠지고 잔머리를 굴릴 줄 아는 아이였다면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엄마, 집에 오다가 홀딱 다 젖었어."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단다.
호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도 물이 들어가 충전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가방도 신발도 속옷도 몽땅 젖었다.
딸아이가 조잘조잘 수다를 떨어대는 게 얼마만일까.
한동안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던 아이였는데.
아이는 요즘 조금 변했다.
"잘 됐네. 신발 버리고 새로 사러 가면 되겠다."
밑창이 다 닳고 가죽도 벗겨진 운동화를 계속 신고 다니는 게 늘 신경 쓰였는데 비에 젖은 김에 내다 버리기로 한다.
"사러 가기 귀찮은데."
딸아이는 사춘기인데도 옷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건 아빠 쪽 유전이다.
저녁에 먹을 반찬을 만든다.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고 생각했지만 둘러보니 남은 식재료가 꽤 많다.
오늘은 참치김치찌개와 멸치볶음을 만들기로 했다.
남은 식재료로 메뉴를 구상해 반찬을 만드는 건 언제나 재밌다.
내일은 딸아이의 방학식.
일찍 마친다고 하길래 함께 코스트코에 가기로 했다.
아이가 어디를 함께 가겠다고 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우울증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있다.
"엄마, 학원."
목요일 병원 때문에 미술학원을 못 가게 된 딸아이는 오늘 보충수업을 하러 간다고 했다.
미술학원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선생님도 좋고 친구들도 좋다고 했다.
저렇게 사람을 좋아할 줄 아는 아이인데...
어디서부터 삶의 실타래가 꼬여버린 건지 모르겠다.
아이가 차에서 내리며 묻는다.
"엄마, 듀가나디 티셔츠 입고 가도 되겠지? 웃지 않을까?"
"당연히 되지. 귀엽다고 할걸?"
아이가 웃으며 문을 닫는다.
'변했네.'
예전이었다면 불안한 마음을 가기 싫다던가 짜증 난다는 말로 표현했을 것이다.
여전히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자신을 은근히 따돌리려는 옛 친구의 행위에 대한 기분을 '자퇴할래.'라는 한 마디로 대신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터치라곤 싫어하던 아이가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하고 자기 방 밖으로 나와 동생과 어울려 놀고 아빠 옆에 붙어 앉아 수다를 떨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정 애착을 안정 애착으로 바꾸는 것이 문제해결의 가장 기본이라 했다.
그런데 그 변화가 조금씩 보이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희망을 품는다.
딸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는 동안 쉬지도 않고 나의 하루를 아이에게 늘어놓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