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싫다는 딸아이를 구슬려 쿠우쿠우에 갔다.
예전이었다면 가기 싫으면 우리끼리 간다던가 화를 낸다던가 했을 텐데 요즘은 아이를 설득한다.
"같이 가자~ 엄마는 우리 딸이랑 같이 밥 먹고 싶은데~"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약과 상담의 영향인 듯하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뷔페에 가면 늘 손해다.
특히 요즘의 나는 남들 한 접시만큼도 못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뷔페에 가는 건 경험 때문이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접시를 찾아 음식을 담아 오는 일.
그 쉬운 일을 어려워하는 아이가 우리 집에 한 명 있다.
그래도 요즘은 어느 뷔페를 가든 알아서 잘한다.
'쇼핑에도 적응을 좀 시켜야 하는데...'
딸아이는 옷이나 신발을 사러 가기만 하면 굳는다.
미용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적응을 시키고 싶은데 쇼핑만큼은 죽어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
낯선 느낌이 싫은 건지 옷이나 신발에 관심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굉장히 가성비 떨어지는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는데 웬일로 남편이 투덜거리지 않는다.
원래는 뷔페에 올 때마다 가성비가 떨어진다며 툴툴거리곤 했는데.
남편도 약간은 변한 것 같다.
"가는 길에 안경점에 좀 들렀다 가줘. 안경 찾아야 해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남편에게 부탁을 한다.
예전 같으면 남편이 귀찮아할까 봐 말도 안 꺼냈을 텐데 요즘은 자연스럽게 말을 꺼낸다.
"요새 방학이라 맞은편 학교 주차장에 주차하면 돼."
주차에 예민한 남편에게 미리 주차장을 알려준다.
안경점에 들러 내 안경을 찾는 김에 아들 시력검사도 해본다.
옛날이라면 남편이 짜증 낼까 봐 내 안경만 후딱 찾아서 돌아갔을 텐데.
확실히 나의 무언가가 변했다.
"안경 도수가 안 맞네요. 근시 도수는 시력에 비해 높고 난시 도수는 낮아요."
난시가 있다고?
전에 다니던 안경점에선 그런 말 안 해줬는데?
이 안경점은 설명을 잘해줘서 좋다.
앞으로는 이 안경점에서 맞춰야겠다고 생각한다.
딸아이가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 집에 얼른 가야 한다길래 아들내미 안경은 다음번에 바꾸기로 한다.
원래 있던 테에 안경알만 바꾸려고 했는데 아들은 테도 바꾸고 싶은 모양이다.
은근히 옷이나 신발, 안경 같은 것에 욕심이 있다.
그런 건 날 닮은 것 같다.
아들은 분홍색 안경테를 하고 싶다고 했다.
뭐, 취향은 존중하지만 사춘기 남학생이 과연 학교에 그걸 쓰고 갈 용기가 있으려나?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뻗는다.
모두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자기 할 일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각자의 방에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예전처럼 따로 논다는 느낌이 아니라 서로 떨어져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의 연결.
그건 가족이라고 해서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강해지는 마음의 끈이다.
마음에 병이 생긴 딸아이의 곁에 머물며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이 아픈 딸아이에게 더 많이 신경을 쓰는 게 미안해서 아들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을 위해 남편과 의견을 나누면서 생겨난 연결고리다.
'이게 진짜 가족생활이지.'
남편이 그 비싼 돈을 내고 얼마 먹지도 않는 우리를 보고 투덜대지 않은 것은, 어쩌면 나가기 싫어하던 사춘기 딸아이가 함께 해준 것이 너무 좋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딸내미, 소리 너무 크게 틀면 아빠 정신 산란해져."
라고 했더니
"뭐? 산란? 아빠가 알을 낳는다고?"
라는 엉뚱한 말을 내뱉는 아들 덕분에 배가 아프도록 웃었던 시간이 좋았던 걸 수도 있고.
삶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딸아이가 마음의 병을 앓다가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일이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문득 딸아이가 학교를 가기 어려워하더라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튼튼하다면 그런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데 갑자기 남편이 큰 소리로 웃는다.
"저기, 옛날에, 딸내미."
예전에 아이가 이상한 자세로 시소를 탔다가 다리가 끼여서 경비 아저씨들이 다 몰려와 시소를 분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무섭고 놀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이의 엉뚱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딸아이도 웃는다.
자기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때부터 남편과 나는 아이들이 저질렀던 엉뚱한 사고들에 대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연신 진짜? 우리가? 왜 그랬대? 같은 말들을 한다.
안경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차 안에는 가족다운 가족이 타고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