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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태형 Apr 24. 2017

내가 길에 간 것이 아니라, 길이 나를 불렀다

우사단길 빈티지 의류숍 [37.2]를 만나다.


광기와 집착, 한편으론 순정과 사랑의 이야기 베티블루 37.2 이 가게의 이름은 이 영화로부터 왔다.

매장문을 열자, 그 아름다운 시절, 그 아름다운 그 때의 관계를 응원이라도 하듯 별다른 장식이 없는 순백의 원피스가 손님을 맞이하였다.

우사단의 빈티지 의류샵 37.2도, 어떤 가게일까? 이 가게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Des’ree 의 kissing you가 들려왔다.


자리에 앉자 네 팀의 손님이 가게를 방문했고,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거 엔진이에요? 우와, 중학교 때 입던 건데, 저 아직도 집에 하나 있어요. 귀엽다!”
옷을 보러왔던 한 연인이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두 사람이 한참 동안 옛이야기를 나눈다. 연인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주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옷 한 벌이었다.

손님들이 한차례 몰려왔다 간 후에,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쑥쓰러워 촬영을 거부한 37.2 사장님>

“왜 빈티지 의류를 하게 되었나?”


옷을 좋아했다. 아마 중학교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원체 용돈이 없지 않나, 그 시절엔. 그래서 빈티지 옷을 자주 사입게 되었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멋진 옷을 살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개성적인 면도 있다. 일단 구제 옷은 친구들과 겹치지 않으니까,
개성도 살릴 수 있고, 가격적으로도 비교적 저렴하고, 스타일도 다양하다 보니까 계속해서 빈티지 옷을 입게 되더라. 나는 전부 다 빈티지로 코디하기보다는 새 옷과 빈티지 옷을 믹스매치 하여 많이 입는다.


<사장님은 촬영 내내 가죽을 정리했다>


 옷에 말수는 없지만, 사연이 있다. 구제 옷들은 분명 누군가에게 한 번쯤 사랑을 받았던 옷들이다. 추억이 있다. 조금 차갑게 말한다면, 이미 한번 검증된 옷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37.2만의 셀렉 포인트가 있다면?”


37.2 뿐만 아니라 많은 빈티지 의류 가게들은 가게만의 개성이 있다. 굳이 컨셉을 정하려고 하지 않아도 가게 주인의 개성이 가게에 표출되는 것 같다.
옷을 고르러 가면 이제는 되려 형들이 이런 말을 한다. “이건 너네꺼 아니니?, 이건 37.2껀데?”


끌리는 옷들이 있다. 눈길이 한 번 더 간다고 해야 하나
그런 끌리는 옷들은 옷을 보면서 사람이 동시에 생각난다. 왠지 저 옷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와서 그 옷을 가져간다. 옷이라는 것도 인연이 있나 보다.(웃음)
좋은 옷이 매장에 들어올 때면 가게에 손님이 들어오는 것만큼 행복하다.
옷이 들어오면 점점 그 옷과 정이 들기 시작하는데, 제 주인을 만나서 떠나는 옷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슬플 때도 있다.


<37.2의 액세서리>


빈티지의 좋은 점은 성별에 구애를 크게 받지 않는 것이다. 남자가 입어서 예쁘면 남자가 입고, 여자가 입어서 예쁘면 여자가 입는 거다.
남성, 여성의류 할 것 없이 구제는 모두 취급한다. 저기 있는 액세서리도 그렇고, 가방도 있고 모자도 있다.
여성 의류를 고를 때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여자라면 저런 옷은 한 번쯤 꼭 입어보고 싶다.’
옷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면 그 옷을 꼭 가져온다. 그리고 그런 옷들은 금방금방 나간다.
정감이 가는 옷과는 더 빨리 작별해야 하는 것이,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일이지만 아쉽기도 하다. 아이러니 한 일이다.



식상한 말이지만, 옷은 누구나가 입으니까, 옷을 안 입는 사람은 없으니까,
옷은 생긴 것만큼이나 어떤 사람을 표출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자신의 스타일이 분명하다.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을 뿐이다.
옷가게를 할 때 불문율이 하나 있는데, 가게 주인의 스타일은 고려하지 않고 대중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가게에 주관을 많이 담았다. 옷이 너무 좋으니까, 또 오랫동안 좋아했으니까.


<왼쪽부터 집 열쇠, 매장 열쇠, 창고열쇠>


내 가게는 내 옷장의 연장선이다. 내 옷장에는 가게의 옷들보다 훨씬 더 많은 옷이 있다. 혹시 가게가 어려워져서 접게 되더라도 아마 나는 다시 37.2를 하지 않을까? 옷장이니까. 내 옷장이니까.
가게에 주관을 담아서 그런지 스타일이 맞는 사람은 계속해서 매장을 다시 찾아온다. 새벽에 술을 마시고 가게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옷을 잔뜩 사 가는 사람들도 있다.
스타일과 주관이 맞으니까, 이제는 손님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


<방문하는 모든 손님에게 사탕을 나눠준다>


그런 마음이 있다. 오늘 와서 옷을 샀다고 그 사람이 우리 손님인 것이 아니고, 오늘 와서 옷을 사지 않았다고 그 사람이 우리 손님이 아닌 것도 아니다.
오늘 장사가 잘되었다고 안심하는 게 아니고, 오늘 장사가 안되었다고 좌절하지도 않는다.
그냥 여기는 내 옷장이다. 내 옷장에 마음 맞는 친구들이 놀러 와 옷을 나눠 입는 곳이다.
그래서 누군가 내 가게에 방문했을 때, 치밀한 응대보다는 사탕을 하나 쥐여준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고, 당신과 나의 스타일이 맞는지 확인할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가?”


의류브랜드에서 5년간 일했다. 지금은 좋은 자리에서 일을 잘 하고 있는 후배들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든다.
이렇게 다시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항상 옷과 관련되어 있던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버는 때는 아니지만,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왠지 시간이 더 지나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막연하지만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37.2를 차리게 되었다.

<매장 천장에 인형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우사단에 온 계기가 있나?”


한남동에서 이태원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처음 보는 마을버스를 탔는데, 잘못 내렸다. 그게 우사단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든 느낌은 ‘생소함’이었다. 서울인데 서울 같지 않다고 해야 하나, 정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느낌 있었다. 자신의 개성을 뽐내는 매장들도 많이 있었고, 언젠가 이런 곳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시간이 꽤 흐르고 작업실을 하나 가져야 할 일이 생겼다.



이대와 우사단에 싼 가격으로 좋은 자리가 났는데, 왠지 우사단에 마음이 가더라. 그래서 우사단에 작업실을 차렸다.
그 뒤 좋은 가게 자리가 나서 37.2를 차리게 되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꽃집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끔 꽃내음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그때 내가 길을 잘못 들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소개하고 싶은 옷이 있다면?”
<마 소재 재킷 - 65,000원>


첫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옷은 이 마 재킷이다.
재킷인데 소재가 ‘마’이다. 마는 통풍이 잘 되기 때문에, 걸쳐도 덥지 않다.
온도 차가 큰 봄, 가을철에 입기에 딱 좋은 재킷이다.
디자인도 독특하다. 앞은 흔히 “떡볶이 단추”가 달려있는데, 뒤는 세일러복과 같은 디테일이 살아있다.


<쉬폰원피스 - 45,000원>


두번째 소개하고 싶은 옷은 쉬폰 원피스.
하늘하늘한 소재이다. 심플하면서도 어찌 보면 웨딩 미니드레스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언밸런스 한 옷을 믹스매치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옷이다.


<버버리 트렌치코트 - 120,000원>


세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옷은 버버리 트렌치코트이다.
생각보다 핏이 넉넉해서 남자도 입을 수 있다. 아까 말했던 구제의 매력이다. 옷의 성별을 초월한다.
버버리 하면 베이직 패턴이 가장 먼저 생각나지만, 이 트렌치코트의 패턴은 깅엄체크 라고 한다.
깅엄체크의 특징은 다른 패턴보다 조금은 가벼운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케쥬얼에도, 포멀한 옷에도 잘 어울리는 패턴의 트렌치코트이다.


우연은 필연으로 이어진다고 해야 하나? 37.2의 느낌은 그랬다.
우사단은 감각적인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이태원에서 길을 잘 못 들었던 그날, 우사단 마을 버스 01번은 사실

우사단길이 사장님을 초대하려고 보낸 의전이 아니었을까?


*37.2에서 본 기사를 보여주시면 10% 할인된 가격에 멋진 빈티지 의류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마을 잡지를 위해서 흔쾌히 협찬을 해주신 37.2에 감사드립니다.

*37.2는 우사단로 남자식당의 옆집에 위치했습니다.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758-12


-37.2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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