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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Hyuk Jun 26. 2019

모순, 역설, 아이러니

- <칠드런 액트>(리처드 이어, 2019)

법 앞에서


  판사 피오나는 아동법을 전문으로 특수한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다. 샴쌍둥이의 생존권 여부와 같이 법과 신념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케이스들을 공정하게 판결하는 피오나 앞에 종교를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청소년의 생존권이 놓인다. 종교와 법의 대결에 언론의 관심이 모이며 민감한 상황이 이어지지만 피오나는 소년을 직접 만나러 가는 파격적인 결정을 한다.

 이렇듯 피오나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판사이며 교양있는 삶을 살아가는 성공한 상류층의 사람이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피오나의 삶에 균열이 스며든다. 피오나의 애정없는 행동에 지친 남편이 외도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하던 피오나는 남편이 실망할 법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합리하게 행동한 적이 없는 자신에게 남편이 토로하는 실망감을 피오나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피오나와 정 반대편에 놓여있던 애덤의 삶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애덤은 유쾌하고 재능이 넘치는 소년이다. 애덤은 백혈병에 걸려 죽음에 가까워지는 상황에서도 농담을 건네고 기타를 친다.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 애덤을 피오나가 미성년으로 판단하여 강제 수혈을 진행했던 것은 소년의 미래를 보고 싶다는 기대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문제는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판결이 누군가의 삶에 걷잡을 수 없는 여진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종교라는 신념으로 죽음을 각오한 애덤에게 계획 없는 미래는 나침반 없이 떠난 항해와도 같았다. 넘쳐나는 아이디어와 계획을 주체하지 못한 애덤은 피오나에게 집착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조차 주어진 규칙과 일정에 따라 피오나에게 애덤은 위협이자 예기치 못한 변수였다. 뉴캐슬까지 쫓아와 끝내 사랑을 고백하는 애덤을 매몰차게 돌려보낸 피오나에게 현실은 그저 혼란으로 가득한 무질서의 시간이었다. 이성과 감정이 걷잡을 수 없는 공간, <칠드런 액트>가 그리는 법정이다.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


  언제나 정의롭고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는 피오나의 삶이 흔들린 것은 한 번의 판결이 가져다준 결과는 아니었다. 그녀가 원하던 삶은 주어진 원칙에 따라 모두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을 취하는 법정과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일상 속에서 혼란에 지쳐있는 그녀가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평화로운 표정으로 자유롭게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피오나에게 법정은 이상적인 삶의 공간이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피오나가 취한 대담하고 공정한 판결은  소년의 삶을 아무것도 없는 미지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번도 누군가의 기대를 받아보지 못한 소년이 선택한 신념이 타인의 선택으로 인해 부정될  그는 침묵과 어둠으로 점철된 세계로 내던져진다. 무엇보다 자신을 신념에 내던졌던 부모가 치료받는 애덤을 보며 안도의 표정을 짓는 역설과 마주할  그가 구축한 내면의 세계는 붕괴되었을 것이다. 분명 애덤이 마주쳤던 역설적인 현실은 피오나가 의도한 결과와는 다른 것이었다. 아동의 복지를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여기는 영국 아동법의 취지를 반영하면서도 직접 애덤과 만나는 인간적인 모습까지 피오나는 자신의 법적 신념 아래에서 최선의 선택만을 거듭한다.  

  흥미롭게도 그녀의 선택틀리 . 언제나 정답을 추구하는 그녀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계획된 법정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그녀가 구축한 세계는 판결만이 있을   뒤의 혼돈으로 이루어진 감정이란 애초에 배제되었을 뿐이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치료를 받았던 애덤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며 죽음에 이르는 역설적인 상황은 분명 피오나가 구축한 세계와는 다르다. 결국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할 때의  여진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의 삶이 교차되는 것으로 <칠드런 액트> 막을 내린다.

   <어톤먼트>에서 자신이 저지른 비극을 끝내 수습하지 못하고 관조해야만 하는 브라우니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은 이언 매큐언의 통찰은 <칠드런 액트>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언제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시선(그것은 아마도 역사이자 법일 것이다)이 스스로 아이러니에 빠지는 국면은 피오나와 애덤의 삶이 교차하는 것으로 표상된다. 정반대의 지점에서 끝내 닿을 수 없는 서로를 마주 보게 된 법정에서 피오나와 애덤은 관계의 상처를 체현한다. 삶 속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관계들은 결국 모순과 역설, 아이러니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언 매큐언의 통찰이 빛나는 순간이다. 그런 점에서 <칠드런 액트>는 지극히 문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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