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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Hyuk May 29. 2019

‘김군’들의 세계사

<김군>(강상우, 2019)

기록과 증언 사이


  기록과 증언 사이의 거리는 묘연했다. 영화 <김군>은 일각에서 주장되는 518 민주화운동의 북한 광수대 투입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추적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운동 당시 사진에 찍힌 한 젊은이가 30여년 후 북한의 518 기념식에서 군 장성으로 발견되었다는 주장을 토대로 강상우 감독은 200여명이 넘는 광수들의 기록과 실제 역사를 추적했다. 제1광수라 명명되는 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고 가족이나 지인들의 증언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의심을 부추겼고 광수설의 근거가 되었다. 광수설은 기록과 증언 사이에서 침묵하며 서서히 역사의 흐름과 함께 잊혀져가는 사실로 굳어졌다.

  강상우 감독은 광수들을 추적하며 수많은 광주 시민들과 마주쳤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버린 광수들은 기록에 대한 덮어쓰기를 증언의 형태로 시도하게 된다. 강상우 감독의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이 빛나는 것은 이 지점인데 청문회를 통해 그리고 픽션을 통해 시도되는 518에 대한 재현이 다다랐던 딜레마, 즉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어디서 봉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자신의 올곧은 해석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군과 한 차에 탔던 세 명의 인물들을 30여년의 시간이 지나 처음으로 재회하게 만드는 공간이 영화관이라는 사실은 유의미하다. 끝내 함구하며 살아갈 수 없는 ‘광수들’의 세계가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김군들’의 세계로 변화되는 극적인 재현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겪었지만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세계와 나의 거리를 비약적으로 좁힐 수 있는 것은 결국 영화라는 예술을 거쳐야만했던 것이다. 강상우 감독의 선택은 다큐멘터리적으로는 실패일 수 있지만 영화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종국에 이르러 광수에 대한 편집증적인 시선은 증언과 주장의 겹침을 통한 연출로 인해 일종의 변증법적 상태로 승화된다. 예컨대 군인들과 대치하며 친구와 가족을 잃은 광수들의 얼굴과 집회에서 이들의 광수설을 목놓아 외치는 관계자가 교차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향하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극명하게 주장하는 강상우 감독의 목소리일 따름이다.



그 날, 우리의 봄


  <김군>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극적으로 고양된 감정적 경험을 통과하고 난 뒤 우리의 봄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00주년을 맞이한 31을 지나 419와 516이라는 역사적 격동을 겪고 난후에도 518을 지나 416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봄에 난자한 죽음의 그림자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 것인지 여전히 기록과 증언 사이를 맴돌고 있는 형국이다.

  현실이 이를 담아낼 수 없을 만큼 큰 상처였을 때 예술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넝마주이 출신이었던 김군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어떤 기록도 남길 수 없을 때 예술은 무엇을 대신해서 말해줄 수 있을까. 그동안 소설, 시,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재현되었던 우리의 봄은 김군들의 세계를 온전히, 그리고 진실 되게 그려낼 수는 있을까.


  이강백 작가의 희곡 <봄날>은 아버지-장남-차남-막내-동녀가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었던 피내음 진동하는 봄을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이강백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알레고리를 넘어 현실과 신화의 세계를 넘나드는 가능성을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배층과 피지배층, 권력과 피권력이 일대일로 대응되는 세계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작가 스스로가 인식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기에 도달했던 결론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을 전염시키고 끝내 죽음이라는 결론을 확인해야만 했던 우리의 봄은 여전히 유효하다. 김군들이 살아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세계의 역사는 여전히 쓰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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