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획에 없던 일주일 사용법
통증이라는 것도 시간을 따른다는 걸,
수술 후 이틀째가 되어서야 알게 됐다.
처음 52시간 동안은 그저 하나의 거대한 아픔만이 있었다.
배 안쪽에서부터 몸 전체를 눌러오는, 다른 감각을 허락하지 않는 통증.
그런데 그 아픔이 조금 옅어지자 그제야 다른 것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링거줄을 타고 들어오는 약이 이번에는 혈관을 따라 따끔거리며 흘러갔다.
어제까지는 느끼지 못하던 종류의 아픔이었다.
아니, 느낄 수 없었던 아픔에 더 가까웠다.
사람이란 참 그렇다.
어느 하나가 너무 아프면, 그 아픔만으로 세계가 꽉 차 버린다.
그리고 그 통증이 조금 물러나야 비로소 다른 아픔들이 “여기도 있어요” 하고 말을 건다.
나는 간호사님께 조심스럽게 말했다.
“링거, 조금만 천천히 들어오게 해 주세요.”
속도를 줄이자 혈관을 타고 흐르던 아픔도 조금은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차분해졌다.
아픔에도 조절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이제 걷기 시작했다.
아직 혼자 힘으로 배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여전히 아주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복도를 몇 걸음씩 옮겼다.
직립보행.
그 단어가 이렇게 실감 난 적이 있었을까.
두 발로 서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 당연한 동작이 이렇게 신기한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물도 마시기 시작했고, 죽도 조금씩 먹었다.
맛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삼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작은 사건처럼 느껴졌다.
수술 후, 약 70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분명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었다.
아픔의 결이 달라졌고, 몸이 보내는 신호도 조금은 분명해졌다.
아직은 침대와 나 사이에 여전히 시간이 하나 더 놓여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씩 그 시간을 건너는 중이었다.
수술 2일 차.
아픔의 종류가 바뀌고,
몸이 다시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날.
통증(痛症)은 아플 통(痛), 증상 증(症).
아픔은 병이 아니라, 몸이 문제를 알리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