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수술 주간(3)

- 계획에 없던 일주일 사용법

by 수요일

수술 3일 차


오후 2시를 기점으로 정확히 72시간이 흘렀다.


굳이 초 단위까지 시간을 쪼개어 세기 시작한 건, 그 막연한 말을 믿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루 단위의 느린 보폭보다는, 시간 단위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구체적인 감각이 절실했다.


물을 마셨고, 드디어 죽을 먹었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비워내는 것.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그 단순한 말들이 진리였음을,

이제는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알아채고 있었다.

그 기본만 지켜내도 회복은 충분히 속도를 낼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병원에서의 하루는 빈틈없이 설계된 시간표 위를 흘러간다.

혈압과 체온을 재는 시간,

항생제와 소화제가 혈관을 타고 드는 시간,

검사를 위해 피를 뽑고 엑스레이 앞에 서는 시간.

그리고 병원 밥과 약을 삼키는 시간까지.

하루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 차분하게 반복되었다.


회복이라는 변화 또한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지루하고 규칙적인 리듬 위에서 조금씩 쌓여가는 성실함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 부위의 통증은 여전히 선명했다.

특히 배에 힘이 들어가는 찰나마다 통증은 날카로운 경고음을 보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몸을 일으키고 움직이는 거의 모든 행동에 ‘배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침대에 눕고 일어나는 일, 한 발자국을 내딛는 당연한 보행조차 생각보다 훨씬 많은 복근의 힘을 필요로 했다. 수술 전에는 숨 쉬듯 당연했던 동작들이 이제는 커다란 과업이 되어 다가왔다.

몸이 묵묵히 대신해주고 있었던 그 수많은 수고를, 나는 너무 당연하게 누리며 방치해 왔다.


몸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갈 무렵,

이상하게 마음에 먼저 당도한 것은 안도감이 아닌 조용한 후회였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지금’ 선택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회한.

왜 늘 ‘다음에’라는 무책임한 서랍 속에 소중한 마음들을 넣어두었을까.

몸이 괜찮았을 때조차 왜 나는 미루는 쪽을 선택하며 살았을까.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일은 언제든 찾아오는 당연한 약속이 아니라,

오늘을 무사히 건너온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소중한 덤이라는 것을.


수술 3일 차.

아직 ‘회복’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기엔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하나는 분명해졌다.


몸은 언제나 내게 가장 정직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