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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Jun 20. 2023

‘정치적 올바름’인가, ‘다양성의 추구’인가

<인어공주>의 인종 논쟁을 넘어

아빠, 내가 만약에 옛날에 태어났으면, 노예였을 거야?


아침을 먹다가 대뜸 자신의 팔뚝 살을 가리키며 아이가 물었다. 오늘은 미국의 가장 최근 지정된 연방 휴일인 “Juneteenth”, 즉 노예 해방일이다. 학교에서 휴일의 역사에 대해서 배운 아이가 궁금해졌나 보다.


인어공주를 비롯한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움직임에 대한 실망 혹은 비판 섞인 글들이 한국 페친들로부터 유독 많이 보인다(사실 정치적 올바름이라기보다는, 다양성의 추구가 더 맞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넷플릭스를 비롯한 어린이 채널들의 최근 미국 만화들의 흐름을 봐온 사람이라면, 이 논쟁 자체가 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넷플릭스 인기 만화 <아이다 트위스트>

얼마 전 아이의 학교에서 자유로운 복장을 허용한 날이 있었다. 아이는 라푼젤 드레스를 입고 갔고, 같은 반의 백인 금발 아이는 <애이다 트위스트>라는 넷플릭스 만화 주인공인 흑인 아이 코스튬을 입고 왔다. 다른 동양 아이들 중에는 히스패닉인 <엔칸토>의 이사벨라 드레스를 입고 온 아이도 있었고 모아나가 된 친구도 있었다. 또 다른 백인 친구는 '닥 맥스터핀'이라는 넷플릭스 만화의 주인공인 흑인 아이 옷을 입고 왔다.

SNS에서 유명한 <엔칸토>의 안토니오를 닮은 아이

2019년부로 미국의 16세 이하 인구는 비백인 아이들이 절반을 넘어서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2044년에는 백인 외의 인종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이 추세들은 인종별 출생률과 이민 인구를 고려했을 때, 예상보다 더 급격하게 진행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디즈니가 ‘헛발질‘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인구학적으로 이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미국 문화 전반의 흐름의 일부이라는 얘기다. 한국의 트로트나 복고 예능이 인구구조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처럼. 미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디즈니는, 경향성은 옅어질 수 있으나, 그 방향성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소수 인종 아이를 키우는 입장과, 한국이라는 (비교적) 단일 민족 국가에서 주류 인종으로 살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입장은 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이야기와 동떨어져있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이런 고민들이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인어공주가 이 세 국가에서 특히나 흥행에 실패하고 비난에 직면한 현실 또한 인종차별보다는, 다양성을 위한 다민족 국가의 노력을 이해하기 힘든 환경에서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인종적 다양성의 정 반대편의 세 나라에게서 미국 내에서와 같은 이해를 구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은 인어공주나 디즈니를 옹호하는 글이 아니다. 나는 인어공주는 보지 않았다. 또한 디즈니 최신작들의 작품성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가하는 글에 대한 반박글 또한 아니다. 최근 미국 영화들의 방향이 예술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충분히 이해한다. 단지, 예술 작품은 진공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변화의 물결에서 만화나 영화가 자유롭긴 쉽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이가 해피밀 장난감으로 받은 인어공주

혹자는 미국이 현재 문화 전쟁 중이라 한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사람들은 이미 비판을 하거나 감명받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판국이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하지만 나는 전쟁보다는 새로운 문화의 흐름에 적응하는 과정에 가깝다 생각한다. 다만 이게 진정 전쟁이라면 소수 인종 아이의 부모로서 내가 응원하는 쪽은 정해져 있으므로, 어느 정도 편향될 수밖에 없는 글임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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