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9일의 기록
자살이 나쁜 건가요?
지난 7월, 서촌의 한 작은 책방에서 북토크를 하던 중, 가장 뒷자리에 앉은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손을 들어 나에게 질문했다. 약간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생각을 정리하던 찰나,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제가 선생님 책을 읽고 제 친구들 다섯 명이랑 같이 독서 모임을 했거든요. 선생님은 자살이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는 근거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살을 ‘선택지에 두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솔직히 그 의견에 동의할 수가 없었어요. 제 친구들 모두 그랬구요. 저희는 모두 정말로 힘든 사람들에게는 자살이 기쁨으로 향하는 선택일 수 있다는 데에 동의했어요.”
그제야 첫 번째 질문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뉴스로만, 혹은 소셜미디어에서 익명으로만 접해왔던, 현재 젊은이들이 처한 막막한 현실에 대해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 북토크 중이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고, 미안했다. 이제 막 40대가 된 기성세대 초입의 어른으로서, 우리가 만들어놓은, 만드는데 일조한, 혹은 바꾸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멀리 있어 그녀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질문의 맥락을 생각해 봤을 때, 그녀는 인생의 어떤 순간에서는 분명 자살 생각을 했던 사람인 것으로 보였다.
나중에 출판사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질문자는 김초롱 작가라는,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였다. 이미 온라인에 본인의 참사 이후의 삶에 대한 수기를 연재해서, 어느 정도 대중에 많이 알려진 인물이라 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자살 생각에 시달리던 그녀는, 나의 유퀴즈 방송을 보고, 또 내 책을 읽고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나의 답변을 듣고, 자살 생각이 점점 줄어들었고, 일상을 회복했다고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두 달 여가 지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김초롱 작가가 나와의 만남에 대한 내용을 담은 에피소드를 곧 출간될 책에 담았는데, 확인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추천사를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소재웅 목사님이 추천사를 부탁하셨을 때, 목사님이 어머님을 자살로 잃고 걸어오신 애도의 길을 존경의 눈으로 지켜봤기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김초롱 작가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김초롱 작가가 살아온 지난 1년의 기록을 접하면서, 이 책의 추천사는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앞으로도 사회적 낙인에 맞서 용기를 낸 분들께는 추천사를 써보려고 한다).
추천사를 쓰는 과정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책을 읽고 느낀 진솔한 감정을 주욱 적어내려 갔을 뿐이다. 문제는 그 후였다. 추천사를 막상 보내고 나니, 갑자기 부담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트라우마의 피해자를 위한 추천사를 쓰는데 마음이 왜 이렇게 무겁지?’ 생각해 보니, 극도로 분열된 우리 사회에서 이태원 참사 또한 어느덧 정치적 구도에 끼워 맞춰진 형국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추천사를 읽고 나에게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
내 대답은 하나다. 나는 환자들의 편이다. 이태원 참사의 현장에서 심정지가 온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을 응급의학과 의사는 없을 것이다. 참사 현장에서 심각한 신체적 트라우마를 입은 환자를 수술하지 않을 외과의사, 정형외과 의사 또한 없을 것이다. 나는 김초롱 작가의 주치의는 아니지만, 나에게 그녀는 내가 진료실에서 무수히 봐왔던, 매일같이 만나는, 끔찍한 트라우마의 피해자와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이름 모를 수많은 생존자들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내 환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돕는 것은, 정신과 의사로서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김초롱 작가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1년 전 집단 트라우마를 겪었던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또한 이태원 참사 기일이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 그날의 일을 언급조차 꺼리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길 기대해 본다.
김훈이라는 대 작가의 추천사와 견주어 내 추천사는 초등학생의 글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소설가의 언어로 대신 해준 것 같아 함께 소개한다.
“용기 내주어 고맙습니다.” 콘크리트 사이를 뚫고 나와 핀 장미 같은 이 책의 작가에게,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트라우마의 피해자는 대개 ‘내가 잘못해서, 내게 문제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라며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곤 한다. 피해자가 괴로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 사회는 ‘어째서 우리는 당신의 트라우마를 막아주지 못했는가’ 하고 대신 자책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의 역할이자 치유의 첫 단추다. 이 과정을 생략한 사회에서, 작가가 참사 현장에 두고 온 스스로를 구해오는 과정을 담은 이 생존 일기는 너무나 진솔하고, 순수하고, 따듯하다. 동시에 가슴을 후벼 파고, 웃음을 주다가, 마지막엔 먹먹한 감동을 안긴다. 저자의 이 용기 어린 고백은 공동체적 트라우마를 겪은 모두에게, 공덕동의 심리 상담 선생님이 작가에게 그랬듯,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 될 것이다.
- 나종호, 예일대학교 정신과 교수
재난 참사의 모든 진실은 피해자 쪽에 저장되어 있다. 고통은 피해자의 몸과 마음과 생애 속에 녹아든다. 그래서 참사를 개념화하거나 타자화하거나 정치화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이 비극에 접근하는 입구다.
이 책은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의 삶과 마음이 일시에 무너지고 또 조금씩 추스러지는 과정의 드라마다. 내가 읽기에,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는 김초롱이 참사 후에 베이비시터로 일하면서 어린아이를 돌보는 행복감을 말하는 장면이다. “아기가 분유를 먹는 모습, 아기 냄새, 아기가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내게 감동을 주었다.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건 그 자체로 감동인 거구나 싶었다. 그 순간 나도 살아 있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김초롱은 말했다.(304쪽) 김초롱의 이 말에 덧붙일 말이 나에게는 없다.
김초롱은 책의 마지막에 “돌이켜보면 나를 살린 것은 ‘연결감’이었다”라고 썼다. ‘연결감’. 이 세 글자는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서 사람의 위안과 회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언어다.
- 김훈, 소설가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326279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