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Bending the Arc: 세상을 바꾸는 힘> 후기
오늘 중앙일보에 김용 세계은행 전 총재의 기고문이 실렸습니다. 지난 몇 달간, 저는 김용 박사와 함께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 문제를 돕기 위해 일을 하는 중인데요. 폴 파머와 김용 박사, 그리고 오펠리아 달이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결핵과 에이즈 치료를 위해 노력한 기록을 담은 영화 <Bending the Arc>. 넷플릭스에서 뒤늦게 이 영화를 보며, 김용 박사가 한국 정신 건강과 자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왜 본인과 친구들의 경험에 자주 비유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 책에서 아주 짧게나마 낙인의 세 가지 종류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요. 공공 낙인(우리가 흔히 ‘낙인‘하면 떠올리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 자기 낙인(낙인의 당사자가 스스로 공공 낙인을 체화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마지막 하나, ‘구조적 낙인’을 굳이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나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현실에서, 어찌 보면 공공 낙인만큼이나 더 중요한 것이 구조적 낙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구조적 낙인이란, 개인의 차원이 아닌 거대한 집단이 주체가 되는 낙인으로, 가장 흔한 예가 취업 과정에서 과거 정신 병력 때문에 차별 대우를 하거나, 정부 기관에서 정신 건강 예산에 적은 예산을 배정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자살 예방 예산에 일본의 1/20 수준의 예산을 배정하는 것, 또 정신 건강 예산이 전체 보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1.7%)이 OECD 평균(5%)의 1/3에 불과한 것, 모두 우리 사회의 구조적 낙인에 기인한 것임을 깨닫는 요즈음입니다.
파머와 김용 박사 역시 당시 미국 학계와 정부의 구조적 낙인에 지속적으로 맞닥뜨립니다. "약이 너무 비싸다", "치료 인프라가 전무하다", "지속 불가능하다"며 그들의 성과를 폄하하고 의지를 꺾으려합니다. 실제로 영화에 담긴 90년대 비디오 클립들을 보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발언들이 가감 없이 나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시계도 못 본다, 해시계를 쓰기 때문에 약을 12시간마다 먹을 수도 없다", "그들이 값비싼 약을 원하게 해서는 안된다"와 같은 이야기들이요. 수많은 학자들과 관료들이, “왜 그들을 살려야 하는지”가 아니라, “왜 그들을 살리는 것이 불가능한지”, 혹은 “왜 그들을 살릴 가치가 없는지”에 대해 역설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정신 건강에 예산을 적게 배정하는 것, 그리고 자살 예방에 투자하지 않는 것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요.
영화에는 2년간 치료에도 증상에 차도가 없던 페루의 다약제내성 결핵에 걸린, 피골이 상접한 한 청소년이 나옵니다. 그는 약을 먹기가 너무 힘들다며, 급기야 약을 거부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역 보건팀의 끊임없는 노력과 지지에 힘입어 그는 결국 완치 후 회복을 하게 되고, 현재 시점에서 세계은행 총재가 된 김용 박사에게 피골이 상접했던 환자가 완치 후 건장한 청년이 된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잠시 김용 박사가 머뭇하는 찰나에, ‘나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해 봤어요. 저라면 당연히, “우리가 저 사람을 살렸어요.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네요.”라고 웃으며 뿌듯하게 말할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그는 갑자기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회고합니다.
우리가 저 사람을 거의 죽일 뻔했네요. 치료받을 가치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저렇게 건장하고 멋진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찰나와 같은, 의외의 반응에서, 그가 그들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장벽과 같은 반대를 맞서야 했는지가 느껴져 잠시 숙연해졌습니다. 영화 제목인 ‘Bending the arc’는 도덕이라는 거대한 우주의 호(혹은 궤도; arc)는 매우 길지만, 결국은 천천히, 정방향으로 휘어진다는 격언에서 딴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호를 보다 빠르게 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폴파머와 김용 박사, 오펠리아 달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제가 책을 내고 가장 감사한 일은 우리 사회의 자살이라는 재난의 호를 정방향으로 구부리기 위해 노력하는, 혹은 재난의 호가 반대편으로 휘려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막고 계시는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분들과 전문가들을 알게 된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 우리도 핀란드나 일본처럼 자살률을 성공적으로 낮춘 어느 날, 한국 활동가분들의 자살 예방 노력으로 살아남은 청소년이 건장한 청년이 되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영화를 보면서 그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우리 사회가 부디 “우리가 저 사람을 거의 죽일 뻔했네요. 구할 가치가 없다고 하며.. 저렇게 멋지게 자란 청년을...”이라고 눈물 보이며 회고할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