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부터 꽤 오랜 기간 여드름으로 고생했습니다. 여드름이 특히 심했던 20대 초반 어머니가 백화점에서 권해주셨던 브랜드가 있는데요. 바로 크리니크(Clinique)였습니다.
그렇게 접한 크리니크의 첫인상은 '강한 알코올 향'이었습니다. 당시 향기로운 향의 화장품에 익숙하던 제게 크리니크의 거친 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거기에 의사처럼 하얀 가운을 입은 점원들이 제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주는데, 이게 화장품인지 의약품인지 헷갈릴 정도더군요.
그 경험 탓인지 저는 아직도 크리니크의 스킨케어 제품들은 꼭 설명서대로 조심히 바르곤 합니다. 의사의 처방전에 맞춰 약을 먹듯 말이죠.
이 질문에 대한 피부과 전문의 노먼 오렌트리히 박사(Dr. Norman Orentreich)의 답은 명쾌했습니다. 그렇다(Yes!)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아름다운 피부를 만드는 간단한 습관에 대해 소개했는데요. 그건 바로 세안 후 하루 두 번 각질 제거와 보습을 해주는 것. 즉, '세안-각질 제거-보습'이라는 3단계 케어법이었습니다.
현재 각질 관리의 중요성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1967년에는 아니었죠. 당시 피부는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고, 크림 한 개면 모든 스킨케어가 끝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본 에스티로더 그룹에서는 캐럴 필립스와 노먼 오렌트리히 박사를 영입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게 됩니다. 에스티로더 그룹에서는 당시 운영하던 자체 브랜드 에스티 로더와 아라미스(aramis) 외에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고 싶어 하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렇게 1년의 시간을 거쳐 1968년 9월 크리니크는 미국 뉴욕 삭스 피프스 앤 에비뉴에 론칭했습니다. 무려 117개의 제품과 함께 말이에요.
크리니크의 철학,
모든 피부가 건강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
크리니크의 철학은 바로 '모든 피부가 건강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크리니크는 이 철학을 브랜드의 모든 부분에 섬세하게 구현해 냄으로써 성공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먼저 크리니크는 '모든 피부'에 맞는 화장품이어야 합니다. 민감한 피부를 가진 사람도 예외가 아니죠. 그럼 가장 민감한 피부를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피부 질환이 있는 환자겠죠. 즉, 크리니크는 환자가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안전한 화장품이어야 합니다.
환자가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안전한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테스트를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크리니크에서는 화장품 브랜드로서 세계 최초로 알레르기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죠. 출시 전 모든 제품이 무려 7,200번의 알레르기 테스트를 거치는데, 알레르기 테스트를 통해 단 한 번이라도 이상이 발견되면 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성분 분석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또한 오렌트리히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인공 향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성분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크리니크는 출시 이후부터 현재까지 인공 향을 전혀 넣지 않습니다. 그래서 크리니크의 제품에는 원료 그 자체의 향만 나는데, 이는 크리니크의 의학적이고 전문적인 느낌을 한층 강화시킵니다.
이렇게 모든 피부에 적합한 안전한 화장품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크리니크는 세계 최초로 '무향', '알레르기 테스트'를 한 화장품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화장품 성분에 대한 기준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던 1960년대에 말이죠.
용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생물 검사뿐만 아니라 뜨거운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지 내열, 내광 검사까지 하죠. 누구든 쓸 수 있는 안전한 화장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입니다.
매장 직원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컨설턴트로 채우는 건 화장품 브랜드로서는 세계 최초였습니다.
즉 '모든 피부가 건강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크리니크의 철학을 철저히 구현함으로써 크리니크는 기존의 브랜드와는 완전히 달라졌죠. 알레르기 테스트, 무향, 각질 관리, 피부 상태 진단, 전문 피부 컨설턴트까지, 크리니크가 한 세계 최초의 시도들은 크리니크의 철학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모든 브랜드가 성공하는 건 아니죠. 그 철학을 사람들이 모두 느낄 수 있게 해야만 합니다.
먼저 크리니크는 알레르기 테스트를 한다는 점과 무향이라는 것을 매장, 제품, 광고 등 곳곳에 표시했습니다. 무향이라는 건 정말 향이 없다기보다 인공 향을 넣지 않는다는 뜻이어서 원료 고유의 향은 남아있었는데, 향기롭다기보다는 의약품 같은 향기라 크리니크 제품만의 정체성을 후각적으로 강화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