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은 그 분야의 역사와 연구 업적은 물론이고 전문 용어, 최신 연구 동향 등 살펴볼 게 많습니다. 그래서 출판 편집자에게 결코 쉬운 분야가 아니죠. 예컨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분야는 편집하는 중에도 매일같이 최신 뉴스를 확인해 새로운 데이터를 반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책이 나왔을 때 보람이 무척 크죠. 이번에는 과학책에 관한 제 에피소드를 소개하겠습니다.
나에게 과학책이란?
과학책은 제가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후부터 본격적으로 맡게 된 분야 중 하나입니다. 우주의 역사부터 동식물의 생태까지 다루지 않은 과학 분야가 손에 꼽을 정도인데요. 독자층도 구분하여 어린이, 청소년, 성인, 그리고 특정 관계자 대상의 과학책까지 두루 맡았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책은 편집하기에 그리 쉬운 분야가 아닙니다. 살펴볼 점이 웬만한 분야 못지않게 많아서인데요. 예를 들어 동식물 학명은 표기법이 따로 있고, 전문 용어도 관련 학회나 기관에서 제공하는 정보로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심지어 그 정보를 반영해도 현실에서 주로 쓰는 용어가 따로 있으면 바꿔야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번역 없이 영문 그대로 음차해 쓰는 용어라면 독자가 이를 이해할 수 있을지 검토해봐야 합니다.
번역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국에서 나온 영문 과학책을 번역 출간할 때는 하나 더 살필 점이 있습니다. 미국 과학책은 야드파운드법 단위(예: 마일, 파운드)와 국제 표준 단위(예: 킬로미터, 킬로그램)가 혼용되어 나올 때가 많습니다. 미국 국내에서 쓰이는 야드파운드법으로 설명을 이어가다, 중간에 논문을 인용할 때는 국제 표준 단위로 적은 다음 괄호 안에 야드파운드법 단위를 병기하는 식이죠. 수치가 민감한 분야인 만큼 국제 표준 단위로 변환한 후에 여러 번 살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과학책은 분야별로 편집할 때 신경 써야 할 게 조금씩 다릅니다. 주요 독자층에 따라서도 갈리고요. 하지만 사람들이 어렵게 느끼는 과학을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건 늘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배울 게 많지만 과학책을 맡을 때마다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듭니다.
과학책과 얽힌 에피소드
제가 정식(?)으로 맡은 과학책은 아니지만 제 손을 스쳐 지나갔던 과학책이 기억납니다. 제가 그 원고를 받고 나서 교정을 조금 진행하다가 그 출판사를 퇴사했거든요. 저자 이름도, 원고 주제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저자분의 이 말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논문 같은 글인데 일반인은 어려워할 것 같아 좀 더 쉽게 풀어내고 싶어요.” 뭐, 이런 의견이었죠.
저는 그때 과학책 원고를 처음 받아본 터라, 그 저자분의 의견을 듣고 ‘과학책 저자들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겠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원고를 열어보니 교양 도서처럼 쉽게 풀어내려고 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그 원고의 교정을 시작하면서 여러모로 고민을 거듭했는데, 갑작스레 퇴사하게 되어 무척 아쉬웠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그 책이 세상이 나왔을지 궁금하네요.
두 번째 에피소드는 감수자에 관한 것입니다. 과학책은 전문 지식을 다룬 만큼 때에 따라 그 분야의 전문가를 감수자로 섭외하기도 합니다. 몇 년 전, 감수자 섭외 경험이 거의 없던 제가 한 분을 찾아 감수 의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원고 분량에 비해 감수비가 적은 편이었지만 그분은 흔쾌히 수락하며 ‘이 분야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 애정이 대단한 분이었죠.
그 감수자분은 이후 원고의 오류를 하나하나 잡아내며 세심히 검토하고, 제 문의 사항에도 친절히 답변해 주었습니다. 당시 그 원고가 분량도 많은 데다 워낙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어서 걱정이 참 많았는데, 덕분에 문제없이 책을 출간할 수 있었죠. 책도 인기리에 팔려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과학책을 내고 싶다면
과학책은 그 분야의 전공자, 업계 관계자 또는 과학 교사가 집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책을 집필하려면 먼저 주제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요새 관심을 많이 받는 주제면 좋겠지만 그걸 다룬 책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면 무엇으로 차별점을 둘지 고민해야 해요. 또한 집필 전에 독자층도 명확히 정해야 합니다. 독자층이 성인에서 청소년으로 바뀌기만 해도 학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됩니다. 어린이 과학책이라면 훨씬 쉽게 설명하는 쪽으로 진행해야 하고요.
또한 최신 데이터를 반영해 신뢰도를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만으로 채우지 말고 일상 속 사례를 들거나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흥미를 끌면 좋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개념은 도표, 그래프, 그림으로 보충하면 독자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