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우리는 모두 언젠가 프리가 된다
몇 년 전에 저는 출판사 고르는 방법에 대해 브런치에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경력이 더 짧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었는데요. 그 후 한 출판사의 직장인에서 여러 출판사와 협업하는 프리랜서로 자리를 옮기면서 함께할 출판사를 고르는 방법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전하고픈 이야기도 조금 추가됐고요.
따라서 이번에는 신입 편집자로서 출판사를 선택하는 저만의 기준을 설명해 보려 합니다. 회사 규모, 근속 연수와 같은 수치적 요소를 제외하고 제가 경험에 따라 주관적으로 판단한 기준입니다. 제 생각이 모조리 바뀌지는 않았을 테니, 예전에 쓴 글과 일부 겹치는 내용이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소개할 내용이 몇몇 사람에게는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판단 기준이 있으니 참고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며 다음에 해당하는 편집자에게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
1. 원하는 분야를 픽션 또는 논픽션으로 대략 정해 놓았거나 대부분의 분야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 사람.
2. 출판사 규모나 분야보다는 우선 경력부터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3. 어느 분야든 대체로 상관없지만 ‘앗, 이 분야는 안 돼!’ 하고 마음에 걸리는 분야는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것: “경력을 쌓아가는 데 도움이 될까?”
출판사 공고, 특히 신입 공고는 최근 몇 년 새 더욱 드물어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입 편집자가 더욱 애가 탈 것 같은데요. 여기에 엉뚱한 소리 하나 하자면 “출판사가 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출판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출판사에 이력서를 보내기에 앞서 최소 몇 년간 일할 수 있을지, 나의 경력에 도움이 될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이 점을 간과하고 취직했다가는 큰 고초를 겪을 수 있죠.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출판사를 골라야 할까요?
1.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내 스타일에 맞는지
출판사의 도서 목록을 살펴봤을 때 교정교열이든, 목차 구성이든, 디자인이든 ‘나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주의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 책을 맡은 편집자의 생각도 담겨 있겠지만 출판사 경영진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즉 성향이 서로 맞지 않으면 일하다가 자주 갈등을 빚을 수 있죠. 또한 완성도 문제는 편집자의 실력보다는 급한 마감이나 잦은 수정 같은 다른 요인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온라인서점에서 출간 도서를 살펴보고 의문이 드는 책이 많다면 선택을 재고해 보세요. 보도자료를 통해 출판사가 텍스트를 어떻게 다루는지도 확인해 보면 좋습니다.
2. 판권에 편집자가 2명 이상 있는지
출판사에 선임 편집자가 1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직접 가르치지 않더라도 곁에서 보며). 저 역시 편집자가 혼자이던 시절보다 크로스체크 등으로 다른 편집자의 교정지를 살펴보면서 실력을 크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다만 편집자가 2명 이상이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1명뿐이라면 그 사람이 새로 들어올 편집자에게 인수인계하고 떠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외주 편집자 구분 없이 ‘편집’에 이름을 함께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외주 편집자하고만 일하게 되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외주 편집자들은 보통 경력이 많고 다양한 출판사와 일해왔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습니다.
3. ‘해보고 싶은 분야’보다 ‘해보기 싫은 분야’부터
여기서 ‘해보기 싫은 분야’란 ‘도저히 이 분야의 책은 만들기 어렵겠다’고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마다 서점에서 늘 스쳐 지나가거나 한 번도 관심 있게 살펴보지 않은 분야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그 분야의 최근 도서 경향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보통은 큰 분류가 아닌 세부 분야에서 갈립니다. 책임편집은 그 분야를 깊이 공부하는 것과 같아서, 나와 맞지 않는 분야라면 정말 힘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보고 싶은 분야’보다 ‘해보기 싫은 분야’를 먼저 정리해 보고, 그런 분야를 다루는 출판사는 지원하기 전에 신중히 고려해 보세요.
4. 책을 흐름 있게 꾸준히 내왔는가?
1번에서 언급한 내용과 연결되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책을 꾸준히 내고 있으며 출판 방향이 명확한 출판사가 좋습니다. 출간이 불규칙한 출판사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준비된 원고가 그동안 없었거나, 준비된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 낼 편집자 인력이 부족했을 수 있습니다. 모두 입사 후에 일정이 급하게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을 미리 파악하긴 어렵겠지만 책이 꾸준히 나왔어야 출판사의 성향과 그곳에서 자신이 오래 일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온라인서점의 판매지수도 참고하면 좋습니다. 책이 꾸준히 나오고 잘 팔린다면 당연히 안정적으로 일할 가능성이 높겠죠. 편집자로서 경력을 제대로 쌓으려면 한곳에서 최소 2~3년은 일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편집자가 몇 명 근무하는지 확인해 출간 간격을 기준으로 업무량을 가늠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커버 사진: Unsplash의David Iska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