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우리는 모두 언젠가 프리가 된다
편집자로 일하다 보면 ‘편집자로서의 내 의견’과 ‘출판사의 최종 결정’이 다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원고를 가장 많이 본 편집자의 의견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나온 의견이 더 적절할 때도 많습니다. 오히려 원고 안에 제 생각이 갇혀 버릴 때도 있는 것입니다. 특히 마케팅 측면에서는 원고 밖에서 답을 찾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편집자로 일하다 보면 ‘원고 자체에 대한 판단’과 ‘원고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프리랜서 편집자도 내근 편집자 못지않게 원고를 단순히 교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다양한 의견을 제안하는 편입니다. 출판사에서 애초에 전문가로서 개선점을 이야기해 주길 바랄 때가 많기도 하고요. 의견 제안은 기획안 작성부터 보도자료 등 후속 작업까지 다양한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조율이 필요합니다.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면 큰 틀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의견을 제안하고, 또 저자가 소극적인 원고 교정을 원한다면 가독성이나 전달력 향상이라는 좋은 의도가 있더라도 존중하고 넘어갑니다.
제안은 내 몫이지만, 최종 결정은 내 몫이 아니다
당연히 제 의견은 반영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최종 결정은 출판사의 몫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제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거나 제3의 의견으로 진행하기로 결정된 경우, 프리랜서 편집자는 그 결정에 이르게 된 과정을 확실히 모른 채 남은 단계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근 편집자라면 편집 회의에서 상세한 이유를 듣고 추가로 논의할 기회가 있지만, 프리랜서는 최종 결정만 간략하게 전달받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최종 결정만 간략하게 전달받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복잡한 논의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다 보면 혼란만 생길 수 있지요. 프리랜서 편집자는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라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조언자에 가깝습니다(때로는 내근 편집자도 그러하지요).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아쉬울 수 있지만, 프리랜서 편집자로서 경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최종 결정 안에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이 나오게 된 과정을 알지 못하더라도, 출판사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어떤 방향을 원하는지는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추가 논의만 이어지고, 원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요. 간혹 전화나 메일로 편집 회의 과정을 친절히 설명해 주는 출판사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혼선 없이 남은 단계를 진행할 수 있어 감사함을 느낍니다.
반면에 최종 결정만 간단히 알려 주는 출판사라면, 그 결정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 임의로 추측하지 말고 출판사에 직접 문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종 결정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출판사가 크게 고민하고 있는 지점을 발견하기도 하거든요. 이를 남은 단계에 반영하면 긍정적인 평가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유연한 태도도 연습이 필요하다
이처럼 프리랜서 편집자는 책임편집으로 프로젝트를 맡더라도 핵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깊이 참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내근 편집자도 마찬가지이지만 모든 결정이 편집자의 손에만 달려 있지 않으며,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프리랜서 편집자는 최종 결과물에 대해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 좀 더 여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프리랜서 편집자라면 정확하고 성실하게 의견을 제시하되, 이후의 결정은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는 제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종 결정이 제 의견과 달라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남은 단계를 마무리하려 노력합니다. ‘노력’이라고 말한 것은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섭섭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연한 자세’는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니, 때로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도 자신을 너무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모든 의견은 책을 잘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커버 사진: Unsplash의Markus Wink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