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근하게 글쓰기

잘 쓰지 않는 단어는 금방 잊힌다

by 나른히

며칠 전, 어느 칼럼에서 ‘뭉근히’를 만나고 반가웠다. 내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이어서일까. ‘아, 맞다. 뭉근히라는 말이 있었지’ 하며 혼자 감탄했다. 출판에 관한 칼럼이었고, 글쓴이 또한 출판 관계자로 기억한다. 글에는 유난히 반가웠던 그 말 외에도 단어 하나하나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득했다. 확실히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단어를 잘 골라 써야 하는구나, 한동안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뭉근히’는 특별하지 않다. ‘세지 않은 불기운이 끊이지 않고 꾸준하게’라는 뜻을 가진 부사 ‘뭉근히’는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서 자주 쓰이는 편이다. 특히 요리할 때. ‘꾸준하게’ 말고 다른 표현을 찾고자 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쉽게 튀어나올 만한 말. 그런데도 나처럼 ‘뭉근히’와 약간 거리를 두고 있다면, 이유는 단 하나. 그런 말을 쓸 일이 없어서(나는 평소에 요리도 잘 하지 않는다).


각종 용어로 가득한 정보를 전하는 도서를 주로 맡다 보니, 말랑말랑한 표현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몇 년 전 에세이를 편집할 적만 해도, 다른 에세이는 물론 국어사전과 SNS도 샅샅이 뒤지며 ‘뭉근히’ 같은 녀석을 찾았다. 모두가 알지만, 막상 글 쓸 때 튀어나오지 않는 말. 정작 써보지 않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즉시 무슨 뜻인지 알아채는 말. 그러면서도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자극적이지 않은 말. 다른 편집자는 어떻게 단어를 활용할까 싶어, 당시 출간되는 에세이의 보도자료를 모두 읽어봤던 기억이 난다.


sharon-mccutcheon-w7e2zctLq3A-unsplash.jpg Photo by Sharon McCutcheon on Unsplash


아무리 교양도서라지만, 가끔은 에세이나 문학 특유의 감성이 필요할 때가 있다. 너무 딱딱하면 괜히 책이 어려워 보일 수 있으니까. ‘뭉근히’ 같이 모호하다고 느껴질 만한 단어는 쓰기 어렵지만, 표현이 다채로워야 했다. 아무리 책이 재밌어도 계속 재밌다고만 쓸 수는 없다. 보도자료를 쓰다 막혀서 답답해지면, 다시 에세이를 펼쳤다(당연히 근무시간 외에). 그 안에 찬란한 단어의 세계가 펼쳐졌다. 누군가에게는 늘 쓰는 단어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보물찾기와 같았다. 다만, 찾아놓은 보물도 쓸모를 찾지 못하면 금방 잊혔다. 결국, 보도자료에는 에세이에서 찾은 단어들이 영 어색해서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요새 들어 말랑말랑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아니면 유쾌하고 진솔한 글. 다른 글이라도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이런 글에 유독 약한 편이다. SNS에서든 책에서든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며 특유의 말솜씨로 사람들을 미소짓게 만드는 사람들이 부럽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보는 즉시 소위 ‘빵 터지게’ 하는 주접 댓글을 쓰는 사람들은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왠지 온종일 만나는 사람이나 사물마다 재미난 사연을 붙여줄 것만 같다.


쓰이지 않는 단어는 금방 잊히고 마니까, 에세이에서 찾아낸 말들을 써먹으려면 그러한 글을 조금씩 써봐야 한다. 하지만 글쓰기 습관이 딱딱한 쪽으로 잡혀서 통통 튀는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걱정이다. 가끔은 이러한 걱정으로 아예 시작도 못 해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그저 부담 갖지 않고 뭉근하게 도전해보면 언젠가 성과가 나오겠지 하는 마음이다. 애써 찾아놓은 단어만 까먹지 말아야지. 마감일이 없는 글쓰기는 태평해도 괜찮다.



커버 사진: Photo by Sharon McCutche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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