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책 만드는 일》(민음사, 2021년)
작디작은 크기에 130쪽 남짓한 책. 《책 만드는 일》은 2021년 5월 창립 55주년을 맞은 민음사의 회고록이자 안내서이다. 자신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한편, 민음사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넌지시 알려준다.
이 책의 저자는 편집자부터 마케터, 디자이너, 그리고 번역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유튜브에서 민음사TV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반가워할 이름도 존재한다. 책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책 만드는 일》에서 생업을 향한 고민과 애정을 담백하게 털어놓는다.
이 책은 출판계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인 경로를 추적했다. 방점은 어둠이 아니라 이동에 있다. (중략) 마감 직전까지 오자를 수정하느라 판면이 출렁거리듯이, 책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움직인다. - ‘펴내며’ 중에서
마포의 한 동네서점에서 이 책을 사기까지 나는 오래도록 고민했다. 삼천 원이라는 가격이면 바로 살 법한데도, 방 안 책장에 자그마한 책 하나 들어갈 만한 구석이 있는데도 고민이 깊었다. 서점 안을 몇십 분간 휘젓고 다니다가 괜히 눈치가 보여 그제야 손에 쥐게 됐다.
작은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이름난 출판사에 다니는 그들은 부러움이자 질투의 대상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부터 민음사의 책을 읽었기에, 현재 편집자로서 그들처럼 책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속상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작은 출판사에서는 가치를 따지며 망설임 없이 출간을 결정하기가 힘들다.
불가해한 업무와 그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을 마주하며 좌절한 탓도 있었다. ‘못된 원고를 억지로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 분투를 저 사람들은 모르겠지?’ 하는 옹졸함도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던 듯하다. 못난 감정은 마음속에 편견을 가득 쌓아 올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깨달은 점은 그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 어쩌면 나를 제외한 많은 편집자는 자기 자리에서 일을 꾸준히 해내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에서 현실에 툴툴대기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던 흔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을 통해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 연결될 때, 그러니까 책이 영원의 다리를 건널 때, 그 책은 다시 태어나고 또다시 태어난다. - ‘김수영의 편집자들’ 중에서
자신의 진실성에 대한 책임을 자질로 거론할 수 있는 드문 직업이 편집자다. - ‘세계문학의 한가운데’ 중에서
결국 책을 통해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 삶을 바꿀 이야기와 만난다는 것은 (중략) 훈련을 거쳐 인생 문장과 의미를 찾아 나서는 행위에 가깝다는 메시지다. - ‘민음사 『인생일력』 제작기’ 중에서
물론 출간 의도처럼 민음사에 대한 사랑이 가득 묻어 있어, 사람에 따라 이 책의 인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살 만한 이유는 많다. 우선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읽을 수 있을 만큼 부담이 적다. 최근 독서가 드물어진 사람이라면 다시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에 알맞다.
또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출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이 읽거나 익히 알고 있던 책의 뒷이야기를 엿듣는 재미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영도 작가와의 비화를 담은 김준혁 황금가지 편집주간의 글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원고를 고치고 번역하고 살피는 업(業)을 가진 사람들이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이다. 알맞은 낱말을 고르면서도 최대한 중복을 피하고 풍부하게 표현하려는 손길이 느껴진다. 읽기 쉽게 다듬어진 문장에서는 꼼꼼한 글솜씨를 엿볼 수 있다. 좋은 책에서 문장 다루는 방법을 슬쩍 배우는 것도 독서의 재미이지 않을까. 그런 재미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Kamil Feczk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