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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Dec 18. 2021

올해의 글쓰기를 마칩니다

글을 어딘가에 보내는 마음

일하는 틈틈이 글을 썼고 그중 몇 개는 공모전에 흘려보냈다. 내가 문을 두드린 십몇 개의 공모전에서 단 한 군데만 연락이 왔다. 소소한 상금과 상품을 건네받았고 며칠 행복했다.


올해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도전해보려다가 며칠 고민했다. 주어진 날짜가 짧은 편이었고 그것을 해낼 만큼 글쓰기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마감을 맞춘다고 해도 퇴고하기에는 빠듯해서 훌렁훌렁 써낸 원고를 그대로 보낼 것 같았다. 그래서 금방 마음을 내려놓았다. 올해는 여기까지 하기로. 


몇 년간 공모전에 도전하면서 일과 관련 없는 글쓰기에 나 자신을 힘겹게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보도자료를 얼른 내놓으라고 눈 흘기는 상사도 없는데 굳이 마음속에 상사를 만들어 앉혀 둘 필요가 있을까. 가끔은 시간이 답을 줄 때도 있다고 믿기로 했다. 종종 오랜만에 연락해온 작가가 그럴싸한 원고를 건넨 적도 있었으므로.


또한 시도에 만족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그전까지 자격 요건을 겨우 채우거나 내용이 부실한 게 뻔히 보이는 데도 기어코 글을 보냈다. 그러고선 다이어리에 한 줄 적어넣고 뿌듯해했다. 가끔은 가망 없는 시도로 현실을 잊어버리고는 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만족감에 몇 시간이 든든했고, 이후에는 채울 수 없는 공허감이 마음 곳곳에 퍼져나갔다. 해낸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는 괴롭다.


포기하는 용기를 내기 시작하니 일상 틈틈이 휴식 시간이 생겼다.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가끔 책도 읽으면서 재미나게 살았다. 세상에는 시간 보낼 만한 것들이 많다. 그중에 독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경이로울 뿐이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가 있는 세상에서 한 달에 여러 권을 읽어낸다니. 나에게는 한 달에 한 권이면 꽤 놀라운 성과다.


브런치를 읽고 또 쓰면서 개인적인 글쓰기가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 만족한다.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글쓰기를 멈추고 가만히 누워 있었을 것이다. 고갈되는 영감의 우물에서 끽끽 소리를 내며 글감 몇 개를 길어 올렸다. 많은 사람이 좋게 봐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리 길어 올려도 성과가 없으면 이 글이 올해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Photo by Kyle Richner on Unsplash


가끔 사람들에게 원고 투고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편인데, 거기에는 내 경험과 편견이 잔뜩 묻어 있다. 당연히 시도에 의의를 두지 않고 한 번도 고쳐 쓰지 않은 원고를 보냈다고 하면 나쁜 말이 튀어나오지 않게 몰래 입단속을 한다. 그러고선 상투적인 조언 몇 가지를 내뱉는다. 투고 횟수에 집착하지 말고 원하는 출판사 몇 군데만 골라서 보낼 것. 원고는 몇 번 퇴고를 거쳐서 덜 엉성한 상태여야 할 것.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신중히 고민할 것. 


그렇게 끝내면 좋으련만, 나는 괜히 김빠지는 소리를 덧붙인다. 책이 뭐 별거냐, 어설프게 내는 것보다 매일매일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 언젠가는 알아보는 사람이 있겠지. 뭐 이런 식이다. 출간 작가의 꿈이 절실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내 조언이 귀에 거슬렸을 것이고 무척 속상했을 테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자기 이름이 붙은 책을 원하는 사람이 많음을 브런치에서 깨달았다. 


서점을 가득 수놓은 책들은 모두 작가의 열망으로 만들어졌겠지. 내가 공모전에 연거푸 실패한다고 누군가의 꿈에 부정적인 생각만 늘어놓는 게 아닐까, 곰곰이 되돌아보았다. 내가 남에게 해준 말은 나에게도 똑같이 들어맞았다. 공모전이 뭐 별거냐, 어설프게 내느니 매일 뭐라도 쓰고 있는 게 낫지. 


나는 그동안 브런치에서 출간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주로 건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나쁜 출판사와 연을 맺고 마음고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물론 출간이 오랫동안 바라온 꿈일 수는 있겠으나, 여러분의 원고는 소중하다. 이것저것 찾아보면 좋은 출판사와 그렇지 않은 출판사를 걸러낼 힘이 생긴다. 불필요한 요구를 받아들이면서까지 그 출판사와 계약하려는 이유를 되짚어봐야 한다. 무엇보다 여러분과 함께할 출판사가 어떤 곳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결론은 평범하다. 결과물을 내는 데 집착하지 않고 꾸준히 쓰고 있으면 언젠가 좋은 날이 찾아오리라는 것. 쓰고 있어야만 자신의 글쓰기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 출간이 뭐 별건가, 때를 기다리며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한 거지. 감히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커버 사진: Photo by Benaja German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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