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1일을 편두통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월 1일을 편두통의 후유증으로 시작했으니, 액땜이 꽤 빠른 편이었다. 나의 편두통은 극심한 두통은 물론이고 소화 불량과 구토 등이 뒤따른다. 내가 종종 겪는 이 고통이 편두통인지 몇 년 전에 알았을 만큼 위장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아무튼 그런 탓에 2021년의 마지막 날을 이불 위에 누워 몽롱한 정신으로 배웅했다.
사실 그때 감기도 같이 앓고 있었는데 콧속에 아무런 냄새도 들어오지 않는 걸 딱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감기에 걸리면 으레 그럴 수 있고, 내가 원체 둔한 편이기도 하다. 심지어 나는 감기 기운이 꽤 오래 간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코가 너무 편안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원룸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각종 냄새가 자주 고이는 편인데, 바람이 잘 통하는 여느 집처럼 냄새가 전혀 머물지 않았다. 냄새가 나지 않으니 싱크대 주변도 고요했고, 빨래도 넣은 세제가 무색할 만큼 고요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이번 달에 들어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걸 알게 된 건 새해가 시작되고 2주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후각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서 가까운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이튿날 음성 문자를 품에 안고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잔뜩 검색해보고 후각이 잘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마음속에 두려움이 크게 자리했다. 명절을 앞두고 울상을 지으며 고향에 내려갈 판국이었다.
내 속을 알아챈 듯한 의사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또 CT 촬영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게 밝혀지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원인이 문제였다. 의사는 부비동염이나 종양의 문제는 아니니, 감기 바이러스를 추측했다. 아니, 도대체 나는 어떤 감기에 걸렸던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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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약을 받고 돌아오는 길. 요 며칠 내가 했던 요상한 행동들을 되짚어 보았다. 밥 먹기 전에 반찬통의 냄새를 맡아보고(처음에는 희미하게 냄새가 나다가 1초면 사라졌다), 화장품을 바르기 전에 냄새를 맡아보고, 주변 사람에게 무슨 냄새가 나는지 물어보고…. 온통 냄새뿐이었다.
이 와중에 일이 먼저랍시고 일부터 했다. 냄새가 늘 뒤따르는 일이었으면 알아차렸겠지만, 모니터 속 원고는 무향이다. 그렇게 책으로 시선을 옮기다 보니 책이 향이 떠올랐다. 사무실에 갓 도착한 신간 도서에서 뿜어져 나오는 종이 냄새. 업무든 딴일이든 문소리를 듣지 못했을 때도 냄새로 책이 도착했는지 알아챈 적이 종종 있다. 그러면 책이 쌓인 곳을 찾아가 괜히 코를 갖다 대고 킁킁 맡아보기도 했다(물론 나에게 주어진 ‘편집자 증정 도서’만).
창문을 크게 열어도 냄새가 잘도 숨어 있는 집에서, 나는 선물받은 향초도 고이 모셔둘 뿐이었다. 가끔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 콧속에 가득 들어오던 특유의 향기도 나는 집에 가져올 수 없었다. 화제의 인터넷 짤처럼 디퓨저가 깨질 일이 아예 생기지 않은 셈이다(물론 깨지면 너무 아까우니 안 되지만).
이제 당분간은 책에서도 교보문고에서도 아무 향도 나지 않겠지.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친구와 찾은 동네 서점도 무향이었다. 오히려 별생각 없이 책만 들여다봤던 것 같다. 뒤늦게 눈치채서 그리 속상하지는 않지만, 내가 모르는 새에 일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묘한 기분이 든다. 하소연하는 것이 무안해질 만큼, 코가 얼른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던 몇 주 동안 냄새 신경 쓰지 않고 지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유난히 고요한 집에서 모든 것이 고요했던 순간.
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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