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북극에 관한 한 기사를 보았다. 30년 후에는 북극의 빙하가 다 녹을 거라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이미 시작되어 버렸고, 오히려 가속화될 예상이라며 지구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라도 노력하면 멈출 수 있다는, 되돌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샅샅이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었다.
이 뉴스를 보면서 나는 우리집에 있는 열 살의 아이를 떠올렸다. 나는 30년 후에 70대가 되지만 아이는 40대의 인생을 살 것인데 그 인생은 어떤 것이 될까. 지구의 수명은 아이의 생명의 시간이 될 것이었고, 지구의 변화는 아이의 삶을 정의할 것이었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기로. 미래의 성적, 입시, 직업을 위해 현재를 낭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이가 내 맘과 다르게 놀고만 싶어 할 때, 숙제를 미루고 하기 싫어할 때, 아이와 실랑이를 할 것 같은 이런 순간에 북극을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에게 옳은 말, 맞는 말만 하고 싶어질 때 북극을 생각하면 내 욕심에서 나오는 화를 멈추고 진심으로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얼마 전 아이와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염색을 하지 못해 많이 자라난 내 흰머리를 보며 아이가 말했다.
"할머니 흰머리는 괜찮은데, 엄마 흰머리는 어색해."
이 말을 듣고, 내가 나이가 드는 만큼 나의 흰머리도 아이가 점차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오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이와 함께 즐겨보던 삼국지에서 장군들이 오십 세만 되어도 할아버지로 나오는 게 생각나서 이렇게 말했다.
"삼국지에서 봤지? 거기 나오는 장군들처럼 원래 사람은 나이가 오십 살 정도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거야. 근데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건강하기도 하고 관리도 하니까 그렇게 안 보이는 거야. 요새는 백 살까지 살잖아."
"엄마, 그런데 나는 백 살까지 못 살 것 같아."
"왜?"
"기후위기 때문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한 슬픈 비밀을 아이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는 백 살까지 살 수 있을 거야."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어쩌면 나 같은 어른들이 망쳐놓은 세상에서 나를 위로한다.
더 이상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마스크 아래로 눈물을 삼킨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