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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rocosm Jun 18. 2021

남을 보듯 나를 본다

② Netflix <런 온> 4~6화를 보고 쓰다.

오미주 : 어떡하려 그래요?

기선겸 : 내가 어쩔 수 있는 건 많이 없을 거예요. 제명되거나 정지 먹을 거고 걸려 있는 캠페인들도 다 잘릴 테니까 위약금도 물어 줘야 되고 선수촌도 나와야 되고. 어쩔 수 있는 게 더 있을지 고민도 해봐야 되구요.

오미주 : 왜 그렇게 남 일처럼 얘기해요?


<런 온>의 기선겸을 볼 때면 자기 이야기를 남일처럼 말하는 게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간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임이 분명했다. 보통은 드라마 주인공들이 자기 연민에 취하는 경우가 많았고, 상황에 감정을 곱해 증폭시키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김우식 : 그럴 거 알면서 왜 그러셨어요?

기선겸 : 너는 계속 참을 거니까. 이제 입촌해서 태극기 달았는데, 웬만해선 노이즈 만들기 싫었을 거고. 정치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보복당할 수도 있는 게 두렵고. 반면 나는 은퇴도 얼마 안 남았고, 퇴촌하면 그만이고 … … 돈도 많고.

김우식 : (한숨) 재수 없네요.

기선겸 : (웃음) 그래 농담이라도 좀 해.

김우식 : 진담인데요.


징계받은 후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자기 이야기하는 사람 맞나 싶다. 더 신기한 것은 남들이 듣기 거북할 만한 자신의 집안 사정까지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농담이라 해도 쉬운 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기선겸 나이의 내가 기선겸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내 말을 듣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리 말했을 것이다. 징계를 받은 후에 벌어질 일들 자체보다는 그 두려움에 대해 더 말하거나, 오히려 호기롭게 다 잘 될 거라는 식으로. 또, 김우식(이정하 분)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서 나는 돈도 많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못했을 거다. 상대방이 나한테 부담을 느끼거나 실망하지 않도록 하느라 한번 더 꼬아서 말하는데 에너지를 다 썼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상대방을 배려했지만, 상대방은 나를 절대 전부 다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혼자 생각했을 거다.


내가 이십대일 때는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다 잘 지내고 싶었다. 싫은 소리를 듣지 않는 걸 넘어서 좋은 소리를 듣고 싶었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 성실한 학생, 착한 딸. 어쩌면 그때까지는 인간관계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고, 체력도 남아돌다 보니 애를 써서 이런 목표들을 달성할 수 있었다. 삼십대에 들어서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인간관계가 복잡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어머니만 하더라도, 나의 시어머니로만 생각할 수가 없고 남편의 어머니, 아이의 할머니라는 입장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별생각 없이 지내던 내 부모와의 관계도 남편의 장인, 장모 그리고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입장까지 더해졌다.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나의 생각은 이 모든 관계에 기름칠을 하는데 나의 시간과 체력을 쏟아붓게 만들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구나 하고 느낀 것은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쯤이었다. 이 상태로는 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가족들 사이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면 중간에서 양쪽을 서로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는데, 그러려면 일단 각각 양쪽에 공감을 표시하며 평정심을 찾도록 돕고, 그들이 나에게 한 이야기에 더해서 내가 생각하는 양쪽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덧붙여 순화시켜 말을 전하곤 했다. 즉, 양쪽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매우 애를 썼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애를 쓴 것과는 별개로 그런 이유가 있구나 공감했던 것은 각각 본인이 옳다고 받아들이기 쉬웠고, 결국은 당사자들이 만나서  스파크가 일고 나서야 일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참으로 덧없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순서를 정했다. 일단 말을 전하지 않았다. 당사자가 직접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전하길 바라는 일이 생기면 되도록 직접 이야기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도 상대방이 하는 말의 심중을 파헤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고, 상대방이 알아듣겠지 하면서 돌려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이렇게 수년을 지냈다. 집안 어른들께 전화해서 자주 찾아봬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하는 빈말을 하지 않았다. 못 갈 상황일 때는 죄책감을 갖지 않았고, 갈 수 있을 때 가서 즐겁게 지내다 왔다. 친구들 사이에서 갑자기 약속이 취소될 일이 생기거나, 나만 상황이 맞지 않아 그들끼리 모임을 하게 되어도 그 상황만 객관적으로 받아들였다.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거나 나만 빼놓고 라는 생각까지 가기 전에 그만두었다. 이렇게 생각의 회로를 바꾼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어쩔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고, 그러다 보니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수월해졌다.


그래서 기선겸을 보면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그 부분이 유난히 눈에 띄었던 것 같다.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지, 무엇에 애써야 하고 그만둬야 하는지 알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이 배제되어 소통이 잘 안 되는 말하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기선겸의 말하기는 소통의 시작이라고. 자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데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자신을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그것에 대해 상대방에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는 일에 불과하다. 그것을 어떻게 말하느냐가 그다음 과제라고 기선겸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은 그에 응답을 하게 된다. 오미주처럼 답답해할 수도 있고, 김우식처럼 재수 없어할 수도 있다. 그럼 또 그에 대해 나의 말을 하는 거다. 내가 말을 해야 그다음이 있다.






* 사진출처 : 드라마 <런 온> 공식홈

(https://fs.jtbc.joins.com/prog/drama/runon/Img/site/ProgInfo/2020120713352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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