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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rocosm Jun 29. 2021

삶을 통역하다

③ Netflix <런 온> 7~9화를 보고 쓰다.

극 중 오미주는 통번역가다. 영화를 번역하기도 하고 촬영 현장에서 통역을 하기도 한다. 현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툭하면 말을 끊고 들어오면서 아는 척하는 걸로 유명한 제작자, 영어로만 말하면서 통역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감독과 배우, 영어보다 한국어 촬영 환경이 익숙한 스텝들. 그들 사이에서 오미주가 하는 일은 통번역이라는 한 단어에 다 담기지가 않는다. 제작진들 사이의 통번역은 물론이고, 본인이 전한 말이 잘 이행돼야 한다는 책임감에 촬영 전 준비와 진행, 마무리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그 사이에 실수로 마찰이 생기면 대신 사과도 하고, 양해도 구하고. 통역을 안 하고 있을 땐 할 일이 보이면 잔심부름도 자처하고, 끼니도 거르면서 짐도 지킨다. 열악한 숙소 환경을 견뎌야 하는 것도 덤이다. 


이들 모두에게 영화라는 하나의 목표가 있지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심히 하려는 마음의 크기와 방향은 모두 제각각이다. 이들의 에너지가 한데 뭉쳐서 굴러 굴러 목표에 닿을 수 있도록 하려면 단순히 통역만 해서는 불가능하다. 


오미주 : 아, 처음에는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데 지금은 가끔 내가 진짜 여기서 뭐 하나 싶어요. 말은 겁나 길게 하지. 통역 실수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 시간 다 낭비하는 거니까 예민해지지. 뭐, 통역 안 하고 있을 땐 막 뭐라도 해야 될 거 같고, 현장에서.


오미주의 말을 듣고 있자니 촬영 현장이라는 곳이 삶 자체다 싶다. 혼자 동떨어져 살아가는 게 아닌 이상 우리는 어딘가에 속해 있고, 그 안에서 추구하는 목표를 알게 모르게 내면화해서 살아간다. 직장에 다닌다면 그 부서의 매출 실적이, 프로젝트 모임이라면 결과물이, 가정이라면 화목하게 사는 게 그 목표가 될 수 있다. 목표 사이사이로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오미주가 있다. 오미주는 나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엄마나 아빠일 수도 있고, 아이일 수도 있다. 회사에서 로봇처럼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도 아이 돌보는 일, 공부하는 일, 집수리하는 일 등을 무 자르듯 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이 사이사이를 연결하고 메꾸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이에 끼니를 거르면서 짐을 지키고 있는 오미주의 모습으로 오버랩된다. 


오미주의 일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기선겸이 이렇게 말한다.


기선겸 :  고생했어요. 이런 말 저런 말 다 전달하느라고.


기선겸의 이 말이 나에게도 진심으로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나도 감사하며 인사하고 싶다. 나의 삶을 통역해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 사진출처 : 드라마 <런 온> 공식홈

(https://fs.jtbc.joins.com/prog/drama/runon/Img/site/ProgInfo/2020120713352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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