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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one Feb 04. 2016

공개된 데스노트

- 단어로 만드는 이야기들 -

예전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주인 없는 노트를 주워서 서로의 이름을 쓰고 편지를 쓰기도 하고 놀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름 적힌 아이들이 갑자기 모두 사망하는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수사팀이 꾸려졌지만 아이들이 주웠다는 노트는 찾을 수 없었고 찢어진 종이만 찾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결백했고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기에 수사는 성과 없이 종결됐다. 얼마 후 같은 사건이 다른 곳에서도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범인 없는 사건에서 공통된 사망 조건을 두려워했다. 무작위로 사망하다 보니 사람들은 어떤 지면이든 이름을 적는 것을 꺼려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개명을 하고 개명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타인에게 본인의 이름을 알리는 것 자체를  불편해했다. 심지어 교복이나 군복처럼 이름이 기재되는 의류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제거됐다. 사건이 커지면서 삶을 포기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이 놀이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러시안룰렛처럼 여러 장의 종이를 깔아놓고 렌덤으로 주워서 서로의 이름을 적으며 목숨을 건 놀이가 벌어졌다.

대부분은 따라 하고 싶어도 데스노트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구하지도 못해서 보통의 노트로 하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렇게 팔리는 종이는 대부분 무슨 원한이 있는지 종이가 뚫릴 정도로 지독하게 검게 도배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싫어했다. 사람들은 인터넷상에서 철저하게 가명으로만 존재하게 됐다. 


그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영웅심리인지 이런 분위기를 깨고 싶었는지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목걸이로 달고 다니거나 문신을 하는 등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정상이고 이름을 공개한 자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노트를 고액에 사들이고는 간첩이라도 검거하듯이 우월감에 젖어 이름을 쓰고 다녔다.


역시나 가짜 이름을 적어 놓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의 사진이나 목격한 위치 등을 진짜 데스노트를 샀다는 인증샷과 그 사람이 공개한 이름을 적었다는 인증샷을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사람들은 욕을 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공개한 사람을 살인자 취급하며 어떻게든 이름을 알아내서 이름 없는 누군가가 조용히 살인을 저질렀다. 물론  공개된 이름을 적었을 때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 사실은 철저하게 숨기고 가짜의 이름만 공개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영웅이라며 인정받기를 원했다. 사람들은 진실을 밝혀냈다는 것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상은 그렇게 시궁창보다 구역질 나게 뒤틀리고 있었다. 되돌리기에는 이미 상식조차 통하지 않을 만큼 삐뚤어져 있어서 불가능해 보였다. 이미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심정이나 사정 따위는 누구도 신경 쓰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누가 진짜 데스노트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 학교에서 몇 안 되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공개해 놓고 착실하게 생활하는 친구가 나에게 다가왔다. 문제가 되고 있는 데스노트 사건으로 문제아들이 한 번에 사라지면서 괴롭힘이 사라지고 갑자기 친구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한 착한 친구. 항상 가슴팍에 작은 메모지와 펜을 꽂고 다니며 자신의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를 필기한다는 그 친구가 자신의 아이디어 노트를 나에게 비밀이라며 손에 쥐어준다. 그 순간 창밖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거대한 푸드덕거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을 때 까마귀 같은 거대한 새가 어렴풋이 보인듯했다. 친구는 어리둥절해하는 나의 시선을 붙잡으며 오묘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누군가의 이름을 작은 종이에 적는 것. 단지 그것만으로도 그 어떤 것보다 강한 권력이 되는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믿고 권력을 쥐어 줬음에도, 그 이름조차 신뢰할 수 없는 가짜라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게 된 뒤틀린 시대. 그런 시대의 파도 속에 휘청거리며 타인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인 이름조차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불안한 미래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ehdwlsez4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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