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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큰티팟 Jan 30. 2020

복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육아도 일도 다 잘하는 슈퍼엄마는 없나요?

열혈 육아 중이었던 오후 5시쯤,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혹시 남편이 조기 퇴근했나?

싶어 반갑게 휴대폰을 보니 전에 다니던 직장 상사의 이름이 보였다. 순간 멈칫했다.


그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나의 첫 직장에서 만난 직속 상사였다. 나와 4년 정도 경력이 차이나고, 지방에서 자랐으나 성인이 되어 서울로 상경한 이후로 쭈욱 - 잠실 부근에 혼자 터를 잡고 열심히 사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매일 예쁘게 드레스업하고 다니고, 가끔 지각도 하지만 그 역시도 활발한 성격 탓에 친구도 많고 술자리가 길어졌겠지 싶은-소처럼 엄청 큰 눈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일도 운동도 개인사도 열심히 던 그녀는, 불현듯 업계에서 최상의 대우를 받는 회사로 이직했고, 신입 꼬리표를 떼기도 전에 나는 그녀의 엄청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당시 적성에 맞지 않아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찰나였는데, 그녀의 서프라이즈 이직으로 그런 생각은 꿈도 못 꿀만큼 쏟아지는 업무를 해결해나가느라 바빴다.


주임급 그녀가 나간 자리를 사원인 내가, 인원 보충도 없이 채워나간다는 것은 정말 굉장히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어느정도였냐하면 한창 시즌에는 금요일에 출근할 때 토요일 새벽에 퇴근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었고, 그렇지 않을 때에도 9시-10시 퇴근은 기본이었다. 당시 나와 불철주야 야근하던 동기와 모두가 퇴근한 후에 맥주와 과자를 몇 개 사서 사무실 한편에 풀어두고 새벽까지 일하면서 졸리거나 목마를 때마다 같이 마셨었다.  

이렇게 그 시간을 버텼고, 남들은 혀를 내두를 그 상황들이 솔직히 재미있다고 느껴진 적도 있었다. 한편, 주임의 업무였기에 아무도 신입이던 내 역량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고 그래서 한 만큼 인정도 받았다. 그 성취감이 꽤 달콤했다. 그렇게 업무에 익숙해지고 사람들과도 편해질 무렵 나의 동료들이 또다시 그 회사로 이직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시작으로 1년 정도의 텀으로 내 또래 세명의 팀원이 그 회사 그 부서로 이직을 했고, 회사 내부 사정으로 부서 내 충원을 해주지 않았기에 남은 팀원들 간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져만 갔다. 모두가 다 같이 업무에 치어 살아야 했다. 기약도 없이. 이제 이직할만한 또래는 나만 남았다고 생각한 시점에, 우리 부서의 차장님이 대학동문인 그 회사 부서의 차장님에게 더 이상 우리 회사 출신을 받지 말라 선전포고를 했다. 그렇게 이직 문이 닫혔다.


나의 그녀가 이직한 대기업인 그 회사를, 나도 언젠가 경력이 쌓이면 도전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업계가 좁은지라, 내가 이력서만 몰래 내도 부서 상사들 귀로 전해져 오는데 반나절?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 불안감을 감수하고 지원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이직의 꿈은 놓고, 열심히 직장을 다니다 퇴직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는데, 하필 이때 그녀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내가 너무도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물론 몇 년 전에.  


"회사에 경력직으로 자리가 생겼는데, 혹시 생각 있어?"

"아 정말요? 아.. 근데 왜 하필 이때.. 아.."

"그냥 한번 생각해봐~ 자리가 났는데 딱 너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네.. 감사해요. 생각해볼게요"


전화를 끊고 아이를 보는데, 멍해졌다.


이런 복직의 기회를 처음 접한 건 아니었다. 최근 복직이 될 수 있는 제안을 몇 번 받았는데,  당장 복직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싶어 생각해봤는데, 아래의 조건 & 상황들을 해결해야 했다. 


- 남편의 육아휴직 (전례는 있으나, 향후 회사에서의 입지가 어찌 될지는 불확실하다.)

- 어린이집 무한 대기 (3월 입소인 집 주변 어린이집 입소가 불가했다.)

- 시부모님께 맡겨야 함 (하루 종일 전적으로 육아를 맡길 만큼의 시간/체력적 여유가 없으시다.)

- 아이의 양육 환경의 변화 (주양육자인 내가 아이가 잘 때 나가서 잘 때 돌아올 예정이다.)


그중, 네 번째가 가장 나의 선택에 발목을 잡았다. 내가 주양육자로 아이를 1년 넘게 보살펴서, 아이의 애착관계는 나로 인해 형성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달 상황 모두 문제없었고 오히려 좋거나 빠른 수준인데, 갑작스레 주 양육자가 변경될 경우 일어날 모든 일의 예측이 불가했다. 그리고 그게 아이 정서상 굉장히 좋지 않다는 글도 봤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복직을 할 수 있으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기에 아이에게 나와 반나절 이상 떨어져 본 경험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엄마가 유령처럼 스치듯 지나만 가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나.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논점은 '이런 상황들을 감수하면서도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가'로 접어든다. 


결국, 나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 분야에 그 정도의 의지는 없었다. 내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일이 내가 꿈꾸던 일은 아니었지만 그 시스템 속에서 살면서 인정받고 (돈으로도),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주부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거기서는 아이의 엄마가 아닌, '나'로 인정받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 그 시간들이 그리웠던 것 같다. 또 금전적 여유가 보장해주는 자유는 얼마나 짜릿한가. 나도 갖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죄책감 없이 모두 지른 후, 예쁘게 차려입고 다시 출근하는 모습을 잠깐 떠올려봤는데,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그렇지만 그 욕망을 아이의 양육과 맞바꿀만한 용기가 없다. 전업 워킹맘들은 일하면서도 애 생각에, 애를 보면서도 일 생각에, 항상 반반 인생을 살며 양쪽 모두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살아간다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말이다. 


그래서, 프리랜서로 업무를 시작하려고 새로운 도전도 계획해둔 올해였다. 업무강도가 세지 않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내가 선택한 베스트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플랜을 짜 놨는데,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분야이기에 또, 정해진 울타리 내에서 주는 월급만 따박따박 받던 풀타임 정직원에서, 프리랜서로 가는 길은 설렘보단 두려움이 확실히 앞섰다. 보장되지 않는 수입과, 복지와, 세금들은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며, 새로 시작하는 일은 비전이 있을까 하는 갖가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고민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전화 한 통 앞에 모든 의사결정이 흔들렸다.


다시 이성적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해나간다. 내가 복직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번에도 동일하다. 하지만 날려버리는 이 기회가, 내가 새로 시작할 일보다 더 좋은 기회였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무엇이 더 옳은 선택이었을지 하루 종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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