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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생각

엄마 생각

늙은 엄마

by 고효경

유치원에서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앙증맞은 작은 의자에 앉아, 차례로 부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실 안은 여기저기서 들썩이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들뜬 얼굴로 창문 쪽을 쳐다보거나 서로의 부모를 가리키며 떠들곤 했다. 나도 고개를 돌려 교실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른들의 그림자가 교실 벽에 드리워지고, 그들 사이에서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세 엄마를 발견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였다. 젊고 세련된 옷차림의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서, 엄마의 모습은 너무 늙고 초라해 보였다. 엄마는 교실 창문 밖에 서 있었다. 다른 학부모들이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거나 아이들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과 달리, 엄마는 창문 밖에서 한발 물러선 채 교실 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 순간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엄마를 보지 않은 척, 모른 척했다.


엄마는 공장에서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서둘러 달려온 게 분명했다. 짧은 1시간 남짓한 점심시간을 허락받아, 도시락도 먹지 않고 나를 보러 온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먼지 묻은 옷, 땀이 맺힌 얼굴, 그리고 창문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주름진 엄마의 미소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그 순간에는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창문 밖에서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며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외면한 채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어린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들었다. 친구들이 ‘너네 엄마는 할머니야’라고 놀릴까 두려웠고, 그런 상황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엄마의 희끗한 머리카락과 초라한 옷차림이 친구들의 시선 속에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 것만 같았고 엄마에게 그런 마음을 갖는 내가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가 그렇게 창밖에서 서 있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결국, 나는 엄마를 향해 한 번도 손을 흔들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그 묵직한 죄책감과 복잡한 감정이 그때는 그저 엄마가 없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겼다.


엄마의 모습을 외면했던 그 순간의 무게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 마음 깊이 남아 있다. 내 나이 마흔도 넘었는데 가끔 그날이 떠오르면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엄마의 희끗한 머리카락, 땀에 젖은 엄마 얼굴, 먼지 묻은 엄마의 품에 안겨 엄마 냄새를 맡고 싶다. 만약 신이 허락하신다면, 나를 다시 유치원의 그 교실로 엄마와 함께 돌아가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나는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를 향해 '우리 엄마가 왔다'라고 기쁘게 손을 흔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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