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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Apr 19. 2023

어느 날, 알래스카에서 노래가 찾아왔다

제5화 음악회는 끝났다

첫 숙소를 거절했던 할머니가 집으로 찾아왔다. 살아계셨으면 우리 엄마 나이로 보이는 금발이 어울리는 분이셨다.


“교장이 부른 선생이니 교장과 같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  여기와 세 번째 이사라고?”

숙소의 문제가 생겼던 교장과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오해한 부분이 있으니 처음 숙소로 돌아가자 하신다.


 “아침부터 오시느라 추우셨죠?” 나는 할머니 두 손을 꼭 잡았다.


학교에서 제공한 자동차 수리는 수리가 완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으면 혼자 어디도 갈 수가 없다.


여기가 알래스카인가, 한국인가 잠시 고독해질 때면 아침 또는 점심을 먹자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생겼다. 갇힌 환경은 존재 그 자체로 나를 궁금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여는 피난처가 되었다.


그동안 준비하던 음악회가 끝났다. 분쟁을 일으켰던 부모들과 다른 학교의 관계자들도 음악회에 참석해 즐거운 표정이었다. 수고한 선생님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교장이 설교를 한다. 아무도 교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온종일 긴장한 탓이었는지 발열 증상이나 온도계를 입에 물고 누웠는데 일어나 보니 새벽 5시다. 목엔 가시가 박힌 듯 침을 삼킬 때마다 따끔거린다.


핸드폰이 울린다.

1시간 후 집 앞에 도착하니 이야기 좀 하자는 교장의 문자다. 1층 계단을 내려가는 창문 사이로 교장의 차가 보인다. 현관 밖으로 걸음을 옮기니 매서운 바람이 얼굴에 닿아 찢길 듯하다.


교장의 차를 타고 내린 곳은 KFC.

선배는 “내가 더는 내 상황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이제 그만 돌아가 줬으면 좋겠어.”


지난달 교단에 오르는 교장의 머리에 물병이 날아갔다. “니가 선생이야? 한국으로 돌아가”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이 교장에게 물병을 던졌다.


“선배님이 부르셨으니 가라시면 돌아가야겠죠, 크리스마스 행사까지는 마무리하고 돌아갈게요. 비행기 표는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배는 장황한 자기변명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는 나의 선배가 아니다.


한국에서 온 감사 덕분에 앵커리지 박물관에 갔다. 미국 정부가 알래스카를 사들인 지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아트 하다.


고래를 잡는 원주민들, 그들의 생활 변천사, 러시아인들의 이주 사진을 보다가 검은 유리 벽 사이로 내가 보인다. 며칠 후 나는 이곳을 떠날 텐데 내가 만났던 그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감사와는 한국에서 다시 보자 인사하고 공항에서 헤어졌다. 집에 오니 소포가 도착했다. 받는 사람 란에  이름이 적혀있다.  상자를 열어보니 알래스카에 오기 전 미완성된 나의 앨범이 완성되어 박스 안에 가득 담겨있다. 이곳에서 만난 고마운 이들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전할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앨범 사이에 봉투가 하나 보였는데 “필요한 곳에 쓰거라 아빠의 글씨체였다무뚝한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 순간 참았던 눈물을 쏟아 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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