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 May 07. 2023

아프더라도 사람을 겪어내야 해

전세보증금 3000만 원

 새벽, 친구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자꾸 나보고 죽으라고, 내 귀에 대고 옥상에서 떨어져 내리라고.” 잠결에 받은 친구의 전화이기도 했지만, 횡설수설하는 친구의 목소리 너머로 공포감이 전해졌다. 며칠이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린 시간은 새벽 3시였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가보니 집 앞 놀이터에 바스러질 듯 서 있는

친구의 모습이 위태로웠다. 지갑도 없이 집을 나온 모양인데 친구의 남편이 친구를 현관문 밖으로 밀어 

문을 잠갔고, 그래서 본인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여길 왔다고 했다. 

7년의 시간 동안 나는 그녀를 돌보았다. 그리고 7년이 더 지난 오늘, 나는 그녀의 정신과 주치의 앞에 앉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보신 적 있으세요? 새우 잡이로 유년 시절에 끌려가 성인이 되어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나오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어요. 친구에게 꼭 그런 상황으로 학대당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친구 분의 주치의라서 말씀드리진 못했지만 우울증에는 2가지 경우가 있어요. 하나는 나는 피해자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도와줘야 한다는 경우, 나머지 하나는 나로 인해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며 마지막 숨까지 조용히 멈추고 사라지는 경우죠.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친구 분은 전자에 속해요. 


우울증이 옮는다는 말이 있죠? 그 말은 틀린 말이지만 뇌에 대미지를 크게 남기게 됩니다. 친구분이 효경 씨 때문에 자살 충동을 멈춘 건 맞습니다. 인지 행동에 관한 이론을 공부할 때 학문적으로만 인식했지 실상에서 끝까지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한 사람으로 인해서 사람이 살아나는 모습을 경험한 것은 저도 처음이에요. 

사실 우울증은  약만으로는 호전되기 어렵거든요. 친구분이 함께 살던 전셋집을 빼서 그 돈을 가지고 사라졌다면 친구 분은 살려는 의지가 생긴 듯합니다. 친구분 상담받으러 안 오신 지 좀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과 가족이 돌봐야 했던 그녀를 왜 나는 7년 동안이나 돌보았던 것일까? 

그리고 그 7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보답으로 내 전세보증금을 가지고 달아난 그녀. 몇 달 후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내 전세보증금으로 양악 수술을 진행한 상태여서 얼굴을 알아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내 돈을 돌려달라 했을 때 그녀는 “내가 돈을 줘도 빚쟁이고 안 줘도 빚쟁이니까 돈을 돌려주지 않겠다” 했다.


  7년 동안 치열했던 그녀와의 삶이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가기를 바랐던 나의 진심은 붕대 감긴 그녀의 얼굴 앞에서 산산조각 흩어졌다. 나와의 우정보다도 전세보증금 3000만 원을 택한 그녀에게 

나는 "그래도 매일 죽겠다던 말이 멈추고 살겠다 하니 다행이다" 말하곤 그녀의 집에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더라도 사람을 겪어내야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