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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Jun 13. 2020

20. 국제개발협력과 결혼 (2)  

정말 결혼을 하면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9월이 되면 곧 결혼 2주년이다. 과연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대륙을 건너는 이사를 두 번을 했고, 국내에서도 벌써 두 번의 이사를 했다. 2년 동안 4번의 이사를 한 셈이다. 짐을 싸고 풀고를 반복하며 최대한 가볍게 사는 법을 배웠다. 연애 시절 학생이었던 남편은 직장을 잡았고, 대학생-계약직 지원-대학원생을 반복하며 진화를 거듭했던 나는 이제 전업주부가 되었다. 


국제개발협력과 결혼을 주제로 썼던 글을 간간히 봐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때마다 마치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무엇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졸업 후 동기들은 각자 사회의 한 부분으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데 나는 뭐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으로 자신을 학대했다. 남편은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해외인턴십이든 무엇이든지 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주저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지만 나는 우리 부부가 떨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조금 고리타분할지도 모르겠지만 가족은 꼭 붙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남편은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라고 단언하며 그의 고마운 제안을 거절했다. 


그간의 공백 동안 내가 아무것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나의 초조함은 좋은 원동력이 되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공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어 교원 연수를 받았고,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으며 지금도 나는 무엇인가를 하며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처럼 (ㅋㅋ) 바쁘게 지낸다. 그리고 지금 있는 곳 근처의 공공기관의 국제협력 파트에 지원을 했다. 몇 번의 지원에 낙방을 거듭했다. 그리고 나는 잠정적 취포상태에 이르렀다. 


취포상태와 자기학대급 공부를 반복하던 어느 날 내가 국제개발협력을 공부했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부터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첫째로 나는 가난한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고 싶었다. 

- 둘째로 더 큰 세계를 보고 싶어서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렇게 두 줄로 '왜 내가 국제개발협력을 공부했는지'를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단순했다. 어쩌면 답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첫째로 주위를 둘러보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늘 존재한다. 

- 둘째로 이제 어렸을 때의 국외에 나가야지만 큰 세계를 볼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이미 여러 번의 해외 경험으로 충분히 지쳐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이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힙한 곳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군산이 참 맘에 든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 도시다. 내가 걷는 반듯한 도로에 설켜있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심도, 오밀조밀한 구도심의 모습도 이상하게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 도시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경제적인 위기를 극복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군산의 청년 소상공인상권을 살리고 싶다는 것이다. 주변에 미군기지가 있어 외국인들이 비교적 많은데 이곳의 깊은 역사와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아 아쉬웠다. 군산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본인의 사업장을 홍보할 수 있도록 영어 재능기부를 생각했다. 조만간 모임을 개설해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곳은 국제이주여성이 많다. 그들이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내가 따 놓은 자격정을 바탕으로 국제이주여성들을 위해 한국어 강의 봉사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렇게 나는 국내의 지역이 개발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또 국내에 있는 외국인들을 도울 수 있다. 내가 말했던 1)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2) 한국내의 더 큰 세계를 경험하는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되는 셈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창의적이고 풍성한 방법으로 나는 국제개발협력을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찬찬히 생각해보면 늘 길이 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서 나는 나를 한없이 불행한 취포자로도 만들 수 있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여성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결혼과 국제개발협력은 늘 어려운 숙제라고? 예전의 나의 글에서는 다소 부정적으로 이야기했었다. 지금의 나는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미래의 나는 어떻게 이야기할지 또 모르는 이야기지만, 나는 지금 과거의 내가 바라고 생각했던 일을 하며 나의 인생을 의미 있게 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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