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가는 Feb 16. 2021

군산에서 만난 나의 첫 친구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혼자 심심하지 않아?"


타고난 집순이라 그런지 혼자서도 그럭저럭 바쁘게 지내는 편이다. 한국어 수업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좀 하고, 산책을 다녀오고, 가끔 마트에 다녀오면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월요일이면 피곤해서 꼬박 쉬어야 한다. (ㅋㅋ)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친구들이다. 목적 없는, 그렇지만 마음이 꽉 차는 대화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전화로 또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하면 외로운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된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한 학기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 가이다와 만나게 된 것도 참 신기한 인연이었다. 원래 수업은 2학기부터 진행하기로 되어있었는데 1학기 선생님이 사정상 하차를 하게 되면서 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이름은 G(가명), 국적은 시리아인. 많은 아랍권 친구들을 만나보긴 했지만 시리아 사람은 처음이다. 한국에 온 지 약 6년 정도 되었고 세 아이의 엄마이다. 첫째는 이제 다섯 살, 막내는 아직 한 살이다. 말하자면 한국에 온 후 계속 출산+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풀타임 엄마이다.


G와 수업을 진행하며 사실은 한국어 수업만을 진행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외국인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어 수업에 대한 몰입도가 높은 편이다. 문법이나 어휘에 대한 학구열이 높고 스스로 숙제를 자청해서까지 한다. 그런 학생들과는 달리 G는 어쩌다 한번 내주는 숙제도 못하기 일쑤고 수업 시간에도 모든 관심이 아이를 향해 있어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학생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려면 내가 아이를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아이에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하이톤으로 인사하기도 하고, 안아 재우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손목이 욱신거릴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중에 "-를 좋아해요/싫어해요"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예문을 만드는데 G가 말했다.

"선생님은 A(딸)를 좋아해요. G를 싫어해요."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에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아이에게는 웃으면서 상냥하게 인사하는데 자기한테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어쩌면 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어 문법과 수업이 아니라, 관계의 형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잠정적으로 우리의 공동목표는 '한국어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만 일하고 있었다. 나는 가이다가 한국어 공부를 수월하게 하려고 아이를 돌봐준 일이, 이 친구에게는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구나-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는 아이보다는 엄마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질문도 아이에 대한 질문보다는 가이다에 대한 질문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한국어 수업에 대한 능률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자신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니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자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각자 나라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물어봤다.

"가이 다는 시리아 그리워요? 다시 가고 싶어요?"

가이 다는 쓸쓸함이 깃든 표정으로 말했다.

"가고 싶지만 지금의 시리아는 아니에요. 전쟁 무서워요."

자기는 시리아의 전쟁을 경험했는데 지금도 가끔 전쟁이 나는 꿈을 꾼단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가이다의 눈에 담겨있던 쓸쓸함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자기의 의지가 아니라 전쟁 때문에 쫓기듯 도망 나와야 했던 삶이 오죽했으랴-


G의 수업을 통해 내가 위로를 받은 적도 많았다. 우리는 둘 다 타지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방인이 아니던가. 오히려 내가 모르던 군산의 뉴스를 듣기도 했다. 어디 어린이집에 무슨 일이 있었다, 병원은 어디가 좋다 등 여자 친구들끼리 공유하는 일들을 내게 말해주기도 했다. 하루는 아파서 수업을 쉬어야 했는데 가이다가 감기에 좋다는 차를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 주었을 때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이 낯선 도시에서 나를 걱정해주는 가족 외의 사람, 어쩌면 G가 처음 아니었을까.


또 엄마의 삶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관찰한 것도 처음이었다. 엄마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택시를 타고 아이들 병원을 데리고 다니는 이 친구를 보며, 엄마라는 그 타이틀이 우리를 얼마나 강하게 만드는지 배웠다. 나는 아이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이 친구와 수업을 하며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되었다.  


마지막 종강식, 아이 셋을 데리고 혼자 운전을 해서 참석한 용감한 G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이유 모를 눈물이 났다. 이제 난 이 친구의 세상에 함께 사는구나. 한 사람의 위대함, 그리고 이 사람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난 후로도 우리는 종종 왕래하고 안부를 주고받는다.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 G가 내가 군산에서 처음 사귄 친구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곳에 가면 눈물이 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