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여행, 누군가가 꼭 먼저 떠나야 한다면
우리 부부의 가장 진솔한 대화는 일정이 모두 꺼진 침대에서 이뤄진다. 휴대폰을 덮어두고, 머리맡의 무드등도 끈 뒤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속마음을 가만히 이야기하곤 한다. 대게는 오늘 하루 재밌었던 일이나, 웃긴 이야기, 가끔은 사회나 정치 이야기, 속상했던 일과 같은 비교적 가벼운 주제로 시작되지만 대화의 끝에는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 삶과 죽음과 같은 심오한 주제가 오간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신혼초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곤 했다. 그중 우리는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에 대한 어떻게 보면 우리 스스로 이룰 수 없는, 허무맹랑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서로 먼저 죽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남편 먼저, 아니 아내 먼저를 양보하며 서로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상대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으니 차라리 자기가 먼저 죽겠다는 아이러니 하게도 이기적인 심보일 수도 있겠다. 원래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의 상실감이 큰 법이다. 상상을 좋아하는 나는 남편의 장례식이 끝나고 아직 남편의 온기가 남아 있는 옷가지, 신발 등을 정리할 생각을 하며 벌써 코 끝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남편 없이 마주할 하루, 텅 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이제는 나의 소소한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공유할 사람이 없어진다는 상상은 벌써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나와 같은 마음인지 남편 또한 본인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겠다며 부득불 나만은 남아 다오-라고 웃지 못할 양보를 한다.
그러다가 요즘은 나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왕 둘 중 누군가가 그 힘든 상실감을 감당해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그 사람이 내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없이 눈물을 흘리고 그리워할 남편을 생각하니 그것 또한 마음이 아프다. 나 없이 건강은 잘 챙길 수 있으려나, 주말은 어떻게 보내려나, 끼니는 잘 해결하려나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아픔과 그리움, 차라리 내가 짊어지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여느 때와 같던 어느 날 밤, 남편에게 슬그머니 내 결단을 고백했다.
"오빠, 내가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오빠가 먼저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그 아픔 감당할게."
" 왜 갑자기?"
" 그냥, 생각해보니.. 내가 오빠보다 더 씩씩하잖아. 나는 혼자서 더 잘 놀고 오빠보다 요리도 잘하고... 오빠가 먼저 하늘나라 가있으면 내가 잘 정리하고 오빠 따라갈게. 우리 거기서 다시 만나자."
"...."
그 후로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서로의 얼굴을 만져보니 눈가가 축축이 젖어있다. 이 밤에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울어버리다니. 너무 지질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모습이 너무 웃겨서, 둘 다 와하하 웃음이 터져버렸다.
"우리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계획한다고 우리 마음처럼 되지도 않을 일인데 말이야."
혹자는 우리에게 아직 먼 일을 미리 걱정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재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우리의 대화는 우리에게 내일 뭐 먹을지에 대한 고민만큼 중요하고, 10년 후 우리 가정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상상만큼 가볍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고, 인생이라는 여정에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는 의미 있는 질문이다. 죽음에 대한 대화의 끝에 항상 도달하는 결론이 있다. 지금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더 아끼고 사랑하자는 것이다. 서로의 곁을 지키는 존재에게 더 감사할 수 있는 질문, 그리고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함께하는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는 의지를 다지게 하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