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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Sep 30. 2021

바이올린하면 생각나는 한 사람

나도 누군가의 진가를 발견하고 싶다. 

오늘 소마트리오 음악을 듣다가,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내 바이올린 실력을 향상하려면 일단 비브라토 먼저 다시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천천히 차분하게 기본부터 연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머물러 있다, 갑자기 레슬리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영국에 있을 때 내가 바이올린 할 줄 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영국교회 찬양팀에서 바이올린을 해달라고 요청하신 분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주로 모이는 오전 수요예배 때에 꼭 오셔서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예배에 참석하셨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잘하든 못하든, 그냥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셨다. 자신도 젊었을 시절 나처럼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다며 그 시절을 회상하시는 듯했다. 자기가 바이올린을 배울 때에는 비브라토라는 테크닉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깨받침도 없이 수건을 깔고 연주하셨다고 하셨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에게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른 바이올린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는 좋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초록빛 맑은 눈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참 좋았다. 


나는 내 바이올린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귀에서 가까이 들리는 내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요란하다고 생각했다. 깽깽이 소리 같은 울림없는 내 바이올린 소리가 싫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를 만나며 바이올린을 다시 좋아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 연주를 듣고싶어한다는 생각에 설레였다. 내가 사랑할수 없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는 좋아해준다는 그 사실이 좋았다. 지금도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면 할아버지가 그 당시 선물해준 활이 여전히 있다. 바이올린 가게에서 골라보라며 바이올린 활을 사주셨던 할아버지. 연신 고맙다고 반복하는 나에게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미소 짓던 레슬리 할아버지가 눈에 선하다. 


나의 낡은 바이올린. 여기저기 성한 곳도 없고 관리가 소홀해 부끄러운 악기지만, 어쩌면 그것이 꼭 나의 모습과도 같을까. 내세울 것 없고 여기저기 고친 자국들로 화려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진가를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모습. 네 소리는 지금도 충분하다며 그 가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숨기고 싶은 서늘한 그늘을 바라보며 여기에 아름다움 있다고 콕 집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먼저 손 내밀어 그 사람의 진짜 가치를 발견해주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그 사람의 깊은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는 사람. 내가 될 수 있을까? 


몇 년 전 페이스북에서 레슬리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할아버지 생각으로 마음이 먹먹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작은 영국마을 지역 신문에 할아버지의 부고가 났었다. '사랑받던 교회 인물에게 표하는 경의' 그것이 그 부고 소식의 헤드라인이었다. 할아버지는 참으로 사랑받았던, 사랑할만했던 분이셨다. 


오늘은 세상 모든 것을 품을 것 같은 그 따뜻한 눈빛, 레슬리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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