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희정 Apr 04. 2017

생각과 용기, 그 사이

나로부터 프라하까지, 일하고 여행하고 사랑한 이야기

 어디로 가려던 계획, 무엇을 가지려던 바람, 언젠가 이루겠다는 소망은 특별한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사라지곤 한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현해냈던 일이 내게 있었다.


 투어를 시작한 지 6개월 째였다. 바람이 매서우면 매서운 대로 눈이라도 내리면 내리는 대로 진행되는 팁투어. 스스로 원해서 듣는다지만 겨울에 밖에서 3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늘 그랬던 대로 많은 말을 쏟아내었던 그날의 투어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나와 나란히 걸으며 질문을 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이날의 투어가 특별한 투어로 기억되는 것은 바로 그녀 때문이다. 


 그녀는 나에게 식사하자고 했고 나는 차가 어떠냐고 했다. 많은 접시보다 차 한 잔을 마주 놓은 자리의 대화가 더 넉넉한 법. 주말 오전에 시간을 따로 잡아 커피 한 잔씩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교육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로부터 들을 수 있을 거 같았다며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투어 하는 내 모습을 보니 단지 직업으로서의 일이 아닌 거 같았다고 했다. 투어 시작할 때 했던 내 소개를 기억하고는 한국에서부터 여기까지 온 것이 대단하다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나도 그녀가 궁금했다. 다른 유럽의 많은 도시 중에 왜 프라하였는지, 생각한 대로 좋은지, 프라하로 오기 직전 도시와 앞으로 가게 된 도시들은 어딘 지를 물었다. 우리는 꽤 길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학생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해서 우리는 그들에게 전할 말을 짧게나마 촬영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그들이 범죄를 저 질렸든 아니든 아직 학생이니까 평생 친구 사귈 것을 작정하라고 말해주었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평생의 친구로 삼고 그들에게 자신들도 평생 만나도 좋을 만한 사람이 되라고 얘기했다. 카메라 너머로 나를 지켜보는 그녀의 진지한 눈빛이 기억난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서로 하는 일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일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일까, 대화 후 마음이 풍성해졌기 때문일까, 나는 그동안 해 왔던 생각 하나를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투어를 기억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손님들은 이야기를 듣고 가버리시니까 가끔은 허전한 마음이 들기까지 해요.
그래서 그날 온 손님들의 소지품 중 하나와 제 소지품 하나를 놓고
사진을 찍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생각만 하고 용기가 없어 한 번도 해보지는 못했네요.



 이 아이디어는 사실 팁투어 가이드가 되기 위한 면접 때 자신만의 투어를 어떻게 만들 거냐는 질문에 대답한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담아내어 나만의 투어 이야기를 만들어 싶다고 얘기해놓고는 그동안 실제로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투어 공부가 빠듯했고 적응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늘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더니 그녀는 투어를 간직하기에 괜찮은 방법 같다고 했다. 손님들도 좋아할 거라며 아마 자기였다면 소지품 하나를 내려놓았을 거란다. 그 말을 들으니 용기가 났다. 소지품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오늘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릴 거라고, 꼭 해보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각자의 소지품을 놓고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녀를 만난 토요일 오전이 지나고 주말을 보내는 동안 소지품 단체사진 찍기를 정확히 언제 시작해야 하나 싶어 달력을 보다가 이틀 후가 음력 1월 1일인 것을 알았다. 더 미룰 것도 없이 마음먹었다. 바로 오후 투어에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6개월째 하던 투어에 뭔가 새로운 것을 하나 더하려니 투어 시작도 전부터 어찌나 떨리던지, 끝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사진 찍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내 생각이 잘 전달될지 모르겠고 아무도 참여를 안 하면 어떡하나 긴장도 하면서 나는 입을 떼었다.



오늘이 2016년 음력 1월 1일이네요.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생각하던 일인데 그간 못하고 있다가 주말 동안에 만난 투어 손님 덕분에
해보는 건데요, 투어에 오신 여러분들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함께 찍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몸에 지니고 계셨던 여러분들 물건 하나와 제 물건을 놓고 함께 사진을 찍어보겠습니다. 사실 처음 하는 거라 저도 많이 떨리네요. 




 그리고는 사진 하나를 찍었다. 그동안 생각만 하던 것이 눈앞에 보이게 된 것이다. 이 날은 2016년 2월 8일 오후였고 응원해준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음은 물론이다. 그녀도 한국에서 함께 기뻐해 주었다. 그 후로 나는 여러 장의 단체사진을 더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50장의 가까운 사진들을 찬찬히 보니 어느 순간 핫팩이 사라졌다. 우산은 있다가도 없었으며 선글라스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거의 항상 놓였다. 다양한 기종들, 묵직한 DSLR에서 셀카봉과 한 몸을 이룬 스마트폰과 필름 카메라 로모까지. 친구의 것과 나란히 놓인 로모카메라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여권에 일기와 메모가 가득한 노트들. ROTC 커플링이 있기도 했고 혼자 온 여행자의 무거운 배낭이 놓이기도 했다. 신발도 있었다. 누군가가 발을 모아 보이도록 찍어보자고도 했다. 정월대보름에는 미리 초콜릿을 준비해서 내려놓고 사진 찍은 뒤에 함께 해준 사람들에게 나눠준 일도 있었다. 반대로 사진을 찍은 다음에 건네받은 것들도 있었다. 볶음 고추장, 홍삼, 사탕과 같은 것들이었다. 어떤 분을 따라 손하트를 찍어본 날도 있었다. 나는 그날그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써서 몸에 지니던 명찰이나 손목시계, 열쇠, 친구가 사준 텀블러 등과 함께 놓았다. 프라하행을 응원해준 후배가 왔을 땐 나에게 선물해준 몰스킨 수첩을 준비했다가 그 후배만 알도록 감사의 뜻을 전하며 내려놓은 날도 있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찍은 사진들이다. 



2016년 2월 8일부터 4월 28일까지의 기록



 하루는 계절이 바뀌려는 무렵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곧 피는 꽃나무에 실을 달아두어 한 해의 복을 기원하기도 한다며 매듭을 올려놓고 간 이도 있었다. 그 매듭을 간직해두었다가 나중에 아몬드 나무의 꽃이 만발했을 때 달아보기도 했었다. 


 이 사진들은 곧 용기이다. 혼자 하는 생각은 그뿐 곧 사라져 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생각을 말하는 순간 누군가의 응원과 꼭 하겠다는 약속이 더해져 그것은 용기로 나타난다. 드디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경험했고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이 경험은 언젠가 용기가 필요할 때 나에게 또 다른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